설교영상

더하거나 빼지말라

믿음찬교회 0 301 2023.03.14 17:19
더하거나 빼지 말라
계 22:18~19
2023.03.10.

우리는 지금 계속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기엔 축복과 약속과 경고와 마지막 당부의 말씀들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들어있는 일종의 보호장치입니다.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다 기록한 이후에 혹 있을지도 모를 내용의 변경을 막기 위해 이와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는 고대 근동의 조약들 마지막 부분에서도 발견되고, 성경 안에서도 발견됩니다. 신명기 말씀을 보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4:1~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신12:32)
그래서 오늘 설교는 요한계시록이 마지막으로 경고하고 있는 이 말씀의 이유와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요한이 자신의 계시록 마지막에 이와 같은 경고의 말씀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네, 당연히 그 이유는 말씀드린 것처럼 후대 누군가의 의도적 내용 변경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예언과 계시는 항상 역사 속에서 가짜와 거짓을 많이 낳았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자신의 예언자적 권위를 높이기 위해 기존의 예언과 계시를 함부로 해석하거나 변경하고, 또 기존의 예언과 전혀 다른 새로운 예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한 당시에도 그런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있었죠. 버가모 교회에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고, 두아디라 교회에는 자칭 선지자 이세벨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자신이 받은 이 계시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이와 같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이 말씀을 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을 예전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율법만큼이나 신성하고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신명기 말씀을 암시하고 배경으로 삼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율법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어선 결코 안 되는 것처럼, 이 계시록 말씀에도 무엇을 더하거나 빼어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계시이자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더하거나 빼지 말라는 이 말씀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의 의미는 물론 단순하죠. 없는 내용 넣지 말고, 있는 내용 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하면, 그것은 바른 해석을 통해 없는 의미 새로 만들지 말고, 있는 의미 그냥 지나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올바른 해석의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단순한 실수나 이해 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거짓된 가르침에 대해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거짓 가르침과 거짓 교훈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이 말씀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신명기 말씀을 살펴볼 때 분명해집니다.
가감하지 말라는 신명기 4:1~2 말씀에 이어지는 4:3 말씀에서, 모세는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싯딤에서의 바알브올 사건을 언급합니다.
그때 거기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브올 우상숭배에 가담했습니다. 그 우상숭배 사건은 하나님의 진노로 24,000명이나 죽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가감하지 말라는 말씀에 이어 그 불행한 사건을 말씀하는 것은 그 가감하지 말라는 말씀이 우상숭배의 거짓된 가르침을 가리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은 신명기 12:32 말씀을 통해서도 분명해집니다.
신 12:32 말씀의 앞 부분에는 가나안 땅의 우상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신 12:32 말씀에 바로 이어지는 뒷 부분에는 거짓 예언자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신13:1~3)
그러므로 가감하지 말라는 신 12:32 말씀은 이와 같이 우상숭배와 거짓 예언자를 경계하는 말씀 중간에 위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는 그 주요 두 가지 원인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와 거짓 예언(거짓 가르침)이라는 것은 별개가 아닌, 서로 연결된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추가로 알아야 할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우상도 섬기는 혼합적인 형태입니다.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공식적으로 저버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우상을 섬겼죠. 그래서 그들의 우상숭배는 한편으론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와 절기를 지키지만, 한편으론 우상을 섬기고 그 삶의 방식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의 우상숭배는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는 혼합적이고 가증한 형태였습니다. 입니다. 사탄은 그런 혼합적인 신앙을 이스라엘 가운데 심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우상숭배하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로 가는 단순한 형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그렇게 우상숭배를 경고해도, 우리와 무관하다 생각하고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여전히 믿고 있고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다만 필요에 따라 상황에 따라 우상에게 절하고 섬긴 것이죠. 비가 필요하거나 경제적 풍요를 원하면 바알에게 가고, 다산이나 자손의 번성이 필요하면 아세라에게 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우상숭배는 오늘날 교회와 신자들에게도 쉽게 일어날 수 있고, 또 실제로 쉽게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항상 경고하는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심으로부터 우상숭배가 흘러나오고 또 그 우상숭배로부터 거짓 예언과 거짓 가르침이 흘러나오는 이와 같은 영적 흐름을 잘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더하거나 빼지 말라는 이 요한계시록 마지막 경고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우상숭배 및 거짓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하신 중요한 경고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간단히 살펴보고 마치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없는 말씀을 더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중 하나는 요한계시록이 말씀하지 않는 종말의 시간표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종말의 징조를 알고 준비하는 신앙이 되어야 하지... 구체적인 종말의 시간표를 만들어선 안 됩니다. 상징적으로 기록된 요한계시록으로 그와 같은 구체적인 종말의 시간표를 만드는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것을 구체적으로 만들게 되면, 그것은 신앙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을 저해하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천국 문이 열리는 시간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영적인 준비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의도하지 않는 종말의 시간표를 만들어, 이 말씀에 무언가를 더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종말의 임박성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그 결과 두려움과 불안감을 만드는 것도 이 말씀에 잘못된 것을 더하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불건전한 해석이 다 그와 같은 잘못에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교회나 세미나나 이단에 가서 배우면, 그 사람은 건전한 자기 삶과 신앙을 잃어버리고 많은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은 시작된 종말론이지, 당장 내일 주님이 오실지 모른다는 단순한 임박한 종말론이 아닙니다.

한편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고 이 말씀에서 빼는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신부의 깨끗한 세마포 옷을 준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은 의로운 삶과 행실이 뒷받침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 믿음이 본래 그렇게 믿음과 행위가 하나된 믿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내용을 빼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고난받고 초라하고 인내하는 교회와 신자를 말하는데 이와 같은 내용도 빼지 말아야 합니다. 종말이 짙어져 갈수록 신앙도 어려워지고 교회도 어려워집니다. 세상이 악해지고 어두워지는데 우리 믿는 자들이 편안히 잘 살고 어려움이 없을 수 없죠. 불의한 시대에 편안하게 잘 사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자들이 마지막 때에 그런 편안하고 잘사는 신앙을 추구하도록 가르쳐선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와 우리 삶과 우리 영혼에 일어나는 사탄의 공격과 거짓과 속임수를 분별하며 인내하며 싸우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더하거나 빼지 않고 순수한 하나님 말씀 그대로를 늘 추구하시는, 깨어있는 여러분들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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