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요한계시록의 복 (1)

믿음찬교회 0 193 2023.01.21 15:55
요한계시록의 복 (1)
계 22:7, 14
2023.01.13.

요한계시록 22:6 이하는 요한계시록의 결론 부분입니다. 이 결론 부분에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도 있고, 또 반대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사람에 대한 복된 말씀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전체로는 모두 7가지 복이 있고, 결론에는 2가지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한계시록의 복에 대해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은혜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7가지 복을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14:13)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16:15)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9:9)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22:7)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상의 요한계시록의 7가지 복을 잘 살펴보면, 크게 2가지 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최종 구원에 대한 복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현재 삶에 대한 복입니다.
우리의 최종 구원에 대한 복은 2번째와 4번째와 5번째이고,
우리의 현재 삶에 대한 복은 1번째와 3번째와 6번째와 7번째입니다.
여기서 신자의 최종 구원에 대한 복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복이죠. 우리가 주 안에서 죽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궁극적인 복이자 복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다만 그것은 아직 미래의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좀 더 관심이 가는 것은 현재에 대한 복입니다. 그리고 이 현재의 복은 미래의 복과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죠. 그래서 이 현재의 복을 우리가 잘 받으면 우리는 미래의 복 곧 최종 구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현재의 복이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7가지 복 중에서 현재의 복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은 우리 믿는 자들의 현재에 어떤 복을 말씀할까요? 그것은 다음 4가지입니다.
  1)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되다(1:3)
  2)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지 않고 부끄러움 보이지 않는 자가 복되다(16:15)
  3)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되다(22:7)
  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되다(22:14)
이렇게 보면 이 현재의 복 4가지는 첫 번째와 세 번째가 비슷하고, 두 번째와 네 번째가 비슷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복 4가지는 결국 2가지 복으로 요약됩니다.
간단히 말해 말씀과 옷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과 자기 옷을 지키는 것... 그런데 그러고 보면, 이 2가지가 놀랍게도 요한계시록의 결론 부분에 있는 2가지 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계시록 7가지 복을 요약하면 이 결론에 있는 2가지 복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거꾸로 생각해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말씀과 옷이라는 이 결론의 2가지 복은 현재의 복 4가지로 확대되고, 그 현재의 복 4가지는 미래의 복 3가지로 확대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요한계시록 결론에 있는 2가지 복이 요한계시록 7가지 복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요한계시록의 7가지 복을 다 받고 싶으시죠? 네, 그러면 무엇보다 이 2가지 복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말씀의 복입니다.
그러면 말씀의 복은 어떤 복인가?... 예언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 복인가, 아니면 예언의 말씀을 잘 아는 복인가... 네 물론 그것도 복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요한계시록이 정확히 말씀하는 내용은 그것을 읽고, 듣고, 지키는 복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말씀의 3단계 복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1단계는 읽는 것이고 2단계는 듣는 것이고 3단계는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단계란 것은 계단이지 않습니까?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것이죠. 그래서 먼저는 읽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여기서 읽는다는 것은 넓은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한다는 의미입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 예배에서 설교를 듣는 것, 성경공부 모임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것이 말씀의 복 1단계입니다.
그러면 왜 이것이 복일까요? 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접하는 것 자체가 복된 것이고, 동시에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의 접할 수 없죠. 그리고 교회 내 신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자들도 자신의 분주한 생활이나 자기 욕심이나 교회의 사정이나 목회자의 인위적인 설교로 인해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너무 분주하고 바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어려운 삶을 살아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거나, 예배에 참석하거나, 성경공부를 하거나 말씀을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심령은 마르고 약해지죠. 그런 우리의 삶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복된 상태가 아닙니다.
교회의 상태 또한 중요합니다. 교회가 어수선하거나 분주하거나 혹은 목회자의 설교가 성경적이지 않아도, 우리는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접하지 못합니다.
과거 비전과 긍정의 힘 같은 설교가 얼마나 유행을 했습니까? 지금도 무분별한 축복과 승리에 대한 설교가 얼마나 자주 유행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지 못하고, 목사가 좋은 목사가 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접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의 제일 조건도 말씀에 있고, 좋은 목사의 제일 조건도 말씀에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 되어야 하고,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달해야 합니다. 교회를 부흥시키고 양적으로 성장시키고 건축하고 ... 그런 능력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잘 전하는 것이 좋은 목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일차적인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접할 수 있는 생활을 하고 그런 복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과 저와 우리 교회는 이와 같은 말씀의 복을 풍성히 받기를 원합니다.

말씀의 복 2단계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씀을 귀로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씀을 이해하여 마음에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관련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말씀이 있죠.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8:17) 여기서 듣는다는 것이 바로 그렇게 이해하며 잘 듣는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은 그럴 때에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실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흘리거나 놓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이시지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하고 들을 줄을 모릅니다. 귀로 들어도 우리 마음 가운데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과 논쟁하는 유대인들에게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을 알지 못함이로다”(요8:43)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대화를 하셨지만, 대화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이 하신 비유 중에 가장 중요한 비유가 바로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우리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심령에 떨어져 싹이 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고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래야 성령님도 우리와 함께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봅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만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합니다. 그런 모습이 제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저의 설교가 많이 부족하고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뭔가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는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듣는 이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만듭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른 가룟 유다가 배반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었죠. 바울의 동역자였던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난 이유도 이것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는 복된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말씀의 복 3단계와 옷의 복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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