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갈릴리로 가라

믿음찬교회 0 537 2022.11.27 11:54
갈릴리로 가라
마 28:1~10
2022.11.27.
지난 주일 우리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내용이 예수님의 부활에 놀라는 여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을 그렇게 암시하고 끝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이 마지막에 암시하는 내용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무덤에 있던 천사가 말한 이 말씀에 있습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그래서 이와 같은 천사의 말을 들은 여인들의 마음에는 이 두 가지 말씀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그는 살아나셨다’ 그리고 ‘너희는 갈릴리로 가라’
그래서 마태복음도 이와 같은 마가복음의 내용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따릅니다. 다만 마태복음은 이 내용을 좀 더 보충하고 좀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부활을 더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 여인들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것을 기록하고, 갈릴리를 더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 예수님이 직접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마지막에 갈릴리를 중요하게 암시하고 끝납니다. 이와 같은 갈릴리 내용을 가장 자세히 말하는 복음서는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다시 만나, 마치 처음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아름다운 내용이 나옵니다. 한편 누가복음은 다른 뜻이 있어서 갈릴리를 말하지 않고 대신 예루살렘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마가, 마태, 요한복음은 다 마지막으로 갈릴리를 말합니다.

그러면 갈릴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왜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시는 걸까요? 네, 그 장소에 담긴 의미 때문입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시작하신 곳이죠.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또 갈릴리는 제자들을 처음 만난 곳입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이렇게 갈릴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처음 만나서 사역을 시작한 곳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거기서 하나님 나라의 꿈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그곳에서 다시 만나길 원하셨습니다. 그 뜻깊은 장소에서 제자들과 함께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쳤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다시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갈릴리는 어떤 의미인가?
네, 갈릴리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작으로 끝나는 복음서...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서의 마지막은 열린 결말이고, 다시 새로운 길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시작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제 새로워진 제자들의 손으로 힘차게 다시 시작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복음서가 마지막으로 말씀하는 갈릴리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갈릴리의 의미를 영적으로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언제나 갈릴리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구약에서 자주 발견되는 하나님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교독한 열왕기상 말씀도 그런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완전히 절망한 엘리야 선지자를 호렙산으로 부르셨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엘리야는 바알숭배가 시작된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아합왕에게 나아가 담대하게 가뭄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도피 생활 중에 사르밧 과부를 구원하고, 그의 아들을 살린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그들을 다 죽이고, 이후 여호와의 능력으로 큰 비를 뚫고 아합왕의 마차 앞을 달려간 능력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알 선지자를 죽인 것에 보복을 맹세하는 이세벨에게 한순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내일 이맘때에 반드시 네 생명을 찾겠다’고 한 이세벨의 위협에 그는 도망하여 광야 깊은 곳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나님은 지치고 탈진한 엘리야를 천사를 통해 어루만지시고 떡과 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호렙산으로 부르셨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40일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합니다. 호렙산은 시내산과 같은 산에 속해 있죠. 같은 산에 봉우리가 여러 개 있으면 그것을 각각 달리 산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과거엔 시나이반도에 있는 전통적인 시내산을 시내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아라비아 미디안 땅에 있는 시내산을 시내산이라고 많이 생각합니다. 지금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땅에 네옴시티를 짓는다고 하는데, 본래 그 땅은 수천 년간 그대로 보전되고 있는 땅으로 간간이 소수의 베드윈 족이 오가며 거주하는 황량한 곳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 있는 시내산에 특별한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곳은 히브리 민족이나 이스라엘과 아무 상관 없는 곳인데, 그 산 앞에 대규모 인원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고 집단 무덤들도 발견되고, 또 각종 돌과 바위에 히브리 고대 문자와 소와 양의 그림들 그리고 ‘메노라’라고 하는 7개의 가지가 있는 촛대 그림이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그 메노라는 너무나 뚜렷한 성막의 성물이자 히브리 민족의 유산이죠. 그래서인지 최근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이런 내용이 최근 20~30년 사이에 많이 알려졌습니다. 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그 지역을 엄격히 통제했는데, 지금은 완화되어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하여 그곳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 미디안 땅에 있는 그 시내산에 가보면, 그 산 앞에 작은 봉우리가 하나 있고 동굴도 있는데, 아마도 그 산이 호렙산이고 그 동굴이 엘리야 동굴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호렙산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엘리야 선지자를 호렙산으로 부르셨을까요? 네, 절망하고 무너진 엘리야 선지자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왜 호렙산일까요? 그곳 브엘세바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에서 일으키시면 되지, 왜 그 먼 호렙산으로 부르실까요? 네, 그곳이 특별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호렙산 즉 시내산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처음 만나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또한 그곳은 그 이전에 모세가 이드로의 양 떼를 치다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출 3:1~2)
모세는 그 특별한 광경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 그렇습니다. 시내산과 호렙산은 그런 산입니다.
모세가 처음 하나님을 만난 곳,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 언약을 맺은 곳... 그래서 나중에 사도바울도 사도가 된 후에 아라비아에 있는 그 산을 방문한 것 같습니다. 갈1:17에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리고 사도바울은 갈4:25에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을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만나,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가 시작된 그 장소로 엘리야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엘리야에게 자신을 계시하시어, 능력의 하나님을 넘어 말씀하시는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너는 또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은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엘리야에게, 그곳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직후 엘리사가 엘리야의 사역을 이어받아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구약의 그 장소가 시내산이고 호렙산이라면, 신약의 그 장소는 갈릴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반하고 도망간 제자들을 다시 만나 다시 시작하는 곳... 그곳이 갈릴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갈릴리라는 은혜의 장소를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무언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축복이고 귀한 일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적인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새 힘을 주셔서 일으키십니다.
지금 이 어려운 세상 속에 얼마나 많은 분이 넘어지고 쓰러지는지 모릅니다. 사고를 당하고 건강을 잃고 사업에 실패하고 시험에 떨어지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죄를 짓고... 다시 일어나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힘과 능력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를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우리를 다시 부르시는 우리 주님이신줄 믿습니다.

사사시대에 흉년이 들고 살기가 힘들어 좀 살아보려고 베들레헴 고향을 떠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갔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그 부인의 이름은 나오미입니다. 그 두 사람은 거기서 살면서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결혼시킵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걸까요? 영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이국땅 힘든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처음에는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다음에는 두 아들도 죽고 나오미만 살아남았습니다. 룻기는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나오미를 룻기는 그렇게 표현합니다.
다 망했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이스라엘 땅을 떠나는 것을 싫어하시는데, 살아보겠다고 우상의 나라 우상의 도시 우상의 문화에 간 것이 하나님의 벌을 받은 걸까요? 그래서 망한 걸까요?
이렇게 나오미는 영적으로나 현실로나 정말 막다른 길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어떤 뉴스를 보니까, 어떤 어머니가 큰 빚을 지고 살 길이 없어서 자녀 두 명을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고 한 그런 뉴스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그런 선택을 하겠습니까? 지금 세상에는 그런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지금의 현실이나 그때의 현실이나 다를 바 없고, 나오미도 시시각각 그런 절망에 빠졌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오미를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에게 고향 땅의 소식을 듣게 하시고, 그 소식을 들은 나오미의 마음에 힘을 주셨습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할렐루야, 룻기는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성경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하나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 소식이 절망적인 그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고향 베들레헴에 돌아왔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나오미를 알아보고 ‘이 사람이 나오미냐?’ 하고 놀랄 때,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기쁨)가 아닌 마라(괴로움)라고 부르라 하면서 그 시선을 견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미에게 새롭게 힘을 주셨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룻기는 다시 일어선 또 한 사람을 소개하죠. 그 사람은 룻입니다. 그녀는 모압 여인인데, 남편이 죽고 자식은 없고 시어머니만 남았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사랑하는 며느리 룻을 자유롭게 해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새로운 좋은 남편을 허락하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돌아가지 않고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이스라엘 땅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룻은 나오미와 함께 이스라엘 땅에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사랑 때문인지, 믿음 때문인지... 그러나 저는 이것도 룻을 사랑하시고 선택하신 하나님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 그러나 여자 두 명이 그 시대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가 마침 보리 추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룻은 ‘지금은 추수철이니, 밭으로 가서 이삭을 조금 주워오겠습니다’ 하고 집을 나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막막한 룻의 발걸음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네, 그렇게 해서 룻은 보아스를 만나고 아름다운 결과를 맺게 됩니다.
룻은 다윗의 아버지의 아버지인 오벳을 낳게 되고, 사람들은 그 오벳을 나오미의 아들이라며 축복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룻기는 이 두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고 다시 시작한 아름다운 역사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려울 때마다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시고 다시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바람과 역사가 여러분의 마음에 늘 불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런 하나님의 역사를 이따금씩 체험했습니다.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 준비하는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참 막막했습니다. 교회를 할 수 있는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 우리가 가진 돈으로 그런 집을 구할 수 있을까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괜찮은 집이 하나 있었지만, 우리가 가진 돈의 거의 2배였습니다. 그 집을 놓치고 나니 실망과 낙심만 커졌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를 거의 포기하고 우선 살 집부터 구하고, 교회 장소는 따로 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한 집을 가계약하고 본계약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착잡했죠. 집은 구했지만, 정작 교회 장소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집을 계약하려고 한 그 마지막 순간에, 현재 저희 집 주인분이 우리가 제시한 가격에 계약하자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집에서 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 장소만 있다고 교회가 되는 건 아니죠. 교회를 시작하고 한동안 저희는 저희 가족끼리 예배드리는 긴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는 항상 깨끗해야지 하는 생각에 열심히 매일 마당을 쓸다가 6개월 만에 그만두고, 1년 반 정도 동네를 전도하다가 그것도 그만두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족한 저희 시간 동안 하나님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두 사람, 한 가정, 두 가정 ... 그렇게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돌아보면, 부족한 저는 감사하게도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목사로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교회로 다시 시작하고... 하나님은 그런 은혜와 역사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여러분들도 꼭 그런 하나님을 만나시고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 모세, 이스라엘 백성들, 나오미, 룻, 엘리야, 이사야, 느헤미야, 바벨론 귀환 유대인들, 제자들, 사도바울...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도 그와 같은 영적인 반열에 다 참여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다시 일어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영적인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일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영감을 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다시 일으키시고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역사는 더 말할 것이 없겠죠? 그것은 하나님의 귀한 영적인 역사이고 복입니다.

자신의 삶 중에 실패가 없고 언제나 안전한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그런 삶도 좋겠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되고, 그런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더욱 복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갈릴리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뜨겁게 만나시고, 다시 힘차게 시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들에핀믿음찬교회 성도님들은 그런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깊이 체험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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