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일곱 대접 심판과 회개

믿음찬교회 0 147 2022.07.29 10:39
일곱 대접 심판과 회개
계 16:1~11
2022.07.22.

하나님의 증거 장막 성전이 열리고 이제 16장부터 일곱 대접 심판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이 다섯째 내용까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섯째와 일곱째 대접은 그야말로 최후 종말의 마지막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이 다섯째 대접까지의 내용은 무슨 의미일까요?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곱 대접과 일곱 나팔은 서로 비슷한 쌍둥이입니다. 배경도 비슷하고 대상도 비슷하고 심판의 순서와 내용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 심판의 의미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가 나고 바다와 강이 피가 되고 해가 사람들을 태운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자연 재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종기와 같은 영적 심적 고통과 괴로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다가 피가 되고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된다는 것은 그들에게 임하는 경제적 어려움과 영적인 어려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그들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심판하시고, 그들의 내적인 기갈을 해소할 물이 없게 하십니다.
해가 불로 사람들을 태우는 것 역시 그들에게 임하는 영적인 고통과 삶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마침내 사탄의 나라는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영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 그리고 삶의 어려움으로 몸부림치게 됩니다.
이렇게 이 말씀은 일곱 나팔 심판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불신자들에게 임하는 영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과 삶의 어려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던 시절 저는 매우 안타까운 소식 하나를 들었습니다. 신대원 동기였던 전도사 한 사람이 자살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또 동기 중 벌써 3명이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전도사가 자살하고 목사가 자살한다는 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교회 개척의 어려움과 사역자들의 불투명한 미래는 한국교회 안의 큰 문제입니다. 신학교는 계속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받아줄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신앙을 가진 가난한 신학생이 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세상 현실과 목회 현실에 부딪히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가난도 가난이지만, 이렇게 무엇보다 믿음과 기도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만나게 됩니다. 교회도 현실이고 개척도 현실입니다.
몇몇 전도사와 목사들은 이와 같은 신앙과 현실의 괴리에 큰 혼란을 겪게 되고, 그러다가 어느 날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그 길을 선택한 동기도 전도사 신분으로 울산에서 몇 명의 청년과 아이들을 모아 개척교회를 했습니다. 열정과 노력은 컸지만, 교회 운영이 잘 될 리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동기는 본인의 실수 혹은 잘못으로 목사 안수의 길이 자꾸 막혔습니다. 전에 사역했던 교회 목사님과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부탁했는데, 저희 지방회에서도 거절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걱정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런 선택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는 신학교를 나오고 목회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도 이런 어둠과 절망을 피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일반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겠습니까? 악한 영들은 역사하고, 거짓과 불의는 만연하고, 살기는 어렵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독해지고 사나워지고 있고, 그것도 잘 안 되는 사람은 삶을 놓아버리고 있습니다.
믿는 우리도 주님의 은혜 안에 있지 않으면, 언제 변할지 모르고 언제 절망과 어둠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시대 속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이 이 땅 가운데 부어지고 있다는 오늘 말씀을 현실로 이해하고, 여기에 대비하는 삶을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면,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3가지입니다.
첫째, 그들이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경배하기 때문(16:2)입니다.
둘째, 그들이 성도들을 박해해 그 피를 흘리기 때문(16:6)입니다.
셋째, 그들이 끝내 회개하지 않기 때문(16:9,11)입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이유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이 가운데 특히 세 번째 이유에 대해선 믿는 우리도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문제... 이것은 비단 불신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는 자는 회개의 중요성을 알긴 알지만, 그러나 믿는 자들도 그 문제에 실제로 빠질 수 있습니다.
종말의 한 특징은 완악함과 회개 없는 생활입니다. 그 역사는 신자나 불신자에게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그래서 말세에 교회 안에는 회개를 모르는 신자, 회개 없는 신자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회개가 안 되면 우리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첫째, 우리 신앙이 영적으로 막히고 죽게 됩니다. 
물이 고이면 썩고 공기가 통하지 않으면 답답하죠. 그런 것처럼 회개가 없으면 영적 순환이 되지 않고 막히게 됩니다. 회개가 막히면 결국 우리 신앙은 죽게 됩니다.
신앙은 점점 굳어지고, 형식적인 신앙이 되고, 껍데기가 되고, 죽게 됩니다.
둘째, 죄가 우리 안에 있게 되고 악한 영이 옵니다.
죄는 악한 영들의 먹이입니다. 악한 영들은 죄의 냄새를 맡고 옵니다. 악한 영들은 죄의 냄새를 맡고 와서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를 처리하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레위기 말씀입니다. 그 원리는 신약의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합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예수님의 피로 하는 것이죠. 
이 부분에 있어서 혹 어떤 분들은 예수님의 속죄를 오해하곤 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의 피로 한 번에 영원히 다 처리된 것으로 압니다. 그렇게 오해하는 대표적인 이단이 구원파인데, 정통 교회 안에도 구원과 속죄를 이렇게 구원파식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속죄는 영원한 속죄이죠. 그러나 예수님의 속죄가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은 그렇게 한 번에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구원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듯이, 속죄도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속죄함을 받았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그리고 그날에 온전히 성취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회개가 필요합니다. 몸 전체를 씻은 사람이라도 발은 계속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알고 회개를 소홀히 하면, 죄가 쌓이고 냄새가 나고 악한 영들이 옵니다. 악한 영들과 사단은 죄를 통해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구원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사모함이 생기지 않습니다.
회개는 영적 순환이고 영적 청소이죠. 악한 것과 나쁜 것을 내보내는 일입니다. 사람의 몸도 이런 작용에 문제가 생기면, 몸의 활력이 떨어지고 특히 식욕이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회개가 없으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영의 양식에 대한 사모함이 생기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피상적인 말씀과 가벼운 말씀을 선호하고, 진지하고 무거운 말씀을 싫어하고, 그러다가 더 나빠지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부하는 의지와 마음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 사람 안에 말씀의 역사가 막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이나 회개나 모두 성령님의 역사인데, 회개 없는 생활은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그분의 말씀의 역사도 제한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가와 같은 딱딱한 마음이 됩니다. 딱딱한 땅에는 말씀의 씨가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회개를 우리가 잘 안 할까요? 왜 우리는 회개를 못 할까요?
첫째, 우리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우린 그런 죄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모든 죄는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다 다르죠. 큰 죄도 있고 작은 죄도 있습니다. 작은 죄는 작은 뿌리를 가지고 있고, 큰 죄는 큰 뿌리를 가지고 있고, 오래된 죄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죄는 우리의 생활 방식과 관련이 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우리의 죄는 우리의 생활 방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우리가 술을 좋아하니 거기서 죄가 생기고, 돈을 좋아하니 거기서 죄가 생기고, 일탈을 좋아하니 거기서 죄가 생깁니다. 힘과 권력을 좋아하니 거기서 죄가 나오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니 거기서 죄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죄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것, 내가 살아가는 것과 관련이 깊습니다. 그래서 비록 회개를 해도 그와 같은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우린 다시 그 죄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를 했다면 우리의 잘못된 생활 방식과 환경과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어두운 환경을 밝은 환경으로 바꾸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임하는 재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재앙은 지금 우리 현실 속에 계속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재앙을 피하고 구원을 받기 위해, 첫째 지혜롭게 살고, 둘째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항상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시고, 늘 겸손하고 정직한 영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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