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짐승의 수 666 (2)

믿음찬교회 0 219 2022.06.08 13:02
짐승의 수 666 (2)
계 13:15~18
2022.06.03.


지난주 우리는 666이 상징적이고 비유적이다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666의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 666은 불완전을 의미합니다.
666은 6이 3중적으로 표현된 단어입니다. 7이 완전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수라면, 6은 불완전을 상징하는 인간 혹은 짐승의 수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7은 자주 등장하지만, 6(헥스)은 여기 외에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여섯째 인이나 여섯째 나팔 등은 6이 아닌 여섯이라는 단어이고, 4:8에서 네 생물의 6(헥스)날개를 말할 때 한 번 등장하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 수가 아닙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불완전의 의미인 숫자 6을 여기에서만 단 1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1번만 사용하는 것은 의도적이죠. 요한계시록의 이와 같은 의도는 사탄과 짐승의 불완전성과 한계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666은 두려운 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 존재들의 힘과 능력과 지혜에 있어서 한계와 미완성과 불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둘째, 666은 사탄 혹은 짐승의 모습과 본질을 의미합니다.
1세기에 사탄이 사용한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이 사탄이 사용한 짐승이었다는 사실은 로마가 황제숭배 및 우상숭배를 제도화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또 그것으로 믿는 자들을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1세기의 666표는 로마제국의 황제숭배 및 우상숭배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666표를 받지 않는 것은 로마의 황제숭배 및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것에 참여했습니다. 황제의 우상 및 각종 우상은 도시 곳곳에 있었고, 로마제국의 주화에도 황제의 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 국가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박해는 물론이고 경제적인 활동이 불가했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기도 어렵고, 장사를 하기도 어렵고, 상인 조합에 가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모임에 가면 항상 먼저 그런 의식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1세기의 666으로부터, 666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즉 666은 한 마디로 사탄 혹은 짐승의 모습과 본질입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과 본질을 강요하는 제도가 666이고, 그런 모습과 본질을 대표하는 인물이 666입니다.

나아가 이 짐승의 수 666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모든 이들의 이마와 손에 부여됩니다. 짐승의 수 666은 그 짐승의 이름의 수이죠. 그 존재의 뜻이나 모습이나 본질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이마와 손에 부여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우스개 소리로 흔히 이마에 성격이 드러난다는 말을 합니다. 이마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는 가장 두드러진 신체부위입니다.
그래서 이마에 짐승의 이름과 그 수가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짐승의 정체성과 본질을 받아들였다는 의미입니다. 짐승의 정체성과 본질을 받아들였고 그 존재들의 소유와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또 그것을 손에 맞았다는 것은 그 존재들처럼 행동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를 이마와 손에 맞았다는 것은 사탄과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그 존재들의 본질을 본받고 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이와 같은 짐승의 모습과 본질을 거부하고 받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계15:2 말씀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15:2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났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네, 짐승과 우상의 모습과 성품과 방법과 길을 이기고 벗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마지막 때엔 그런 모습과 방법과 길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우리는 내 생활 속에서, 매주 뉴스 속에서 그런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최근 퇴임한 문 대통령 사저에 일단의 사람들이 하루 종일 욕설 시위를 한다고 합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문제가 있다면, 고소를 하거나 진정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을 사람들까지 함께 고통을 주는 그런 방법은 결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저는 어쩐지 사탄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탄의 그림자, 광기, 악독한 거짓말, 악의적인 생각과 계획... 우리는 이런 것들을 결코 우리 삶에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미와 손에 666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666표는 지금 우리의 삶과 현실에 이렇게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오늘의 내 삶 속에 나도 모르게, 오늘의 뉴스 속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사탄과 짐승의 모습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666표는 성경 안에만 관념적으로 있거나 아니면 저 먼 7년 대환란에 가면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시대인 지금 우리의 현실에 666표는 존재하고 있고 부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정신을 따르지 않고 세상과 짐승과 우상의 원리와 뜻을 따르면, 비록 보이지 않지만 나는 666표를 받은 것입니다.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않고, 돈을 최고로 여기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눈물 흘리게 하면 그 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 삶을 지속적으로 분별없이 살면, 666표는 내 이마와 손에 낙인처럼 자리를 잡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짐승의 수 666의 정체입니다. “지혜가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여러분, 영적으로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삶 안으로 짐승과 우상의 모습과 본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거짓과 살인과 도둑질과 우상숭배와 음행과 돈과 힘과 자기중심과 무지와 인간에 대한 경멸이나 차별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완전히 깨끗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죄악들과는 결이 다른 삶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무지하고 어두운 사람은 이 종말의 시간 동안 살면 살수록 시간이 갈수록 짐승과 우상의 모습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이마와 손에 있는 666표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종말론적인 가르침과 동일합니다. 양과 염소를 나누고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고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를 따로 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66은 요한계시록에 비록 한 번 밖에 나오지 않지만, 우리 모두가 귀 담아 들어야 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삶 속에서 사탄과 짐승과 우상의 모습과 본질을 받아들이지 마시고, 그것을 거부하고 저항하고 이기는 여러분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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