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인과 네 말 탄 자 1
계 6:1~8
2021.12.03.
부활 승천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이 이제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게 됩니다. 이로써 이 땅에 종말이 시작되게 됩니다. 두루마리를 인봉한 인은 모두 일곱 개인데, 오늘 본문에는 4개의 인을 떼시는 내용을 말씀합니다. 4개의 인을 떼니 4명의 말 탄 자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각각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을 타고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을 내립니다. 오늘 설교는 이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4명의 말 탄 자는 종말에 이 땅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을 의미합니다. 본래 구약에는 하나님의 4가지 심판에 대한 말씀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 대표 본문은 레위기 26:18~28, 에스겔 14:12~23, 스가랴 6:1~8입니다. 레위기는 기근과 흉작, 들짐승, 전쟁과 전염병, 전쟁과 황폐함을 말합니다. 에스겔서 역시 칼, 기근, 사나운 짐승, 전염병을 말합니다. 그리고 스가랴서에는 심판을 상징하는 네 병거가 나옵니다. 따라서 요한은 이와 같은 구약의 4가지 심판을 오늘 본문에서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한편 4명의 말 탄 자에 나오는 숫자 4는 이 심판과 재앙이 전 지구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말세에는 이 땅에 별도의 피난처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어디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말의 환난은 성도나 비성도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다고 피할 수 없습니다. 불법이 성행하고 죄악이 만연할 때 오히려 의로운 성도들은 더 불이익과 피해를 봐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혼자 사는 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마을 끝자락 산의 초입에 전기도 없는 허름한 움막 같은 곳에 사는데, 의외로 영어도 잘하고 가곡도 부르고... 가끔 어느 날은 곱게 차려입고 시내 pc방도 다녀오는 할머니였습니다. pd는 그 할머니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취재를 했습니다.
집에 가보니 한 쪽에 잘 정리된 보따리들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것들이 아들이 자기를 찾아오면 떠나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라 말했습니다. pd가 아들이 어디 살고 언제 오냐고 물으니, 할머니는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젊은 시절 서울대를 나오고 남편을 만나 미국으로 시집을 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시집살이가 너무 심해 결국 이혼을 하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후 한 학교에 교사로 들어갔는데, 그 학교 재단 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밝히려다가 그만 해고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후 할머니는 거듭된 삶의 실패와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그렇게 안타까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 TV 프로그램은 면사무소 직원과 마을 분들의 거듭된 방문을 통해, 그 할머니가 임대아파트로 옮기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보여주고 끝났습니다.
저는 그 방송을 보면서 할머니의 삶의 모든 부분이 안타까웠지만, 특히 그분이 학교 재단 비리를 밝히려다가 그만 쫓겨났다는 부분이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혼을 하고 아들과 헤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시기에 그 일이 일어났고, 그것은 그분의 거듭된 불행에 쇄기와 같았습니다.
그분은 정직하고 정의로운 길을 선택한 것인데, 결과는 안타깝고 혹독했습니다. 저는 불의한 세상에서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누구도 그분과 같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인 저야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쉽게 설교할 수 있죠. 그러나 신자들이 현실 속에서 그렇게 살기 위해선 힘든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늘 공격을 받습니다. ‘너는 얼마나 정의롭고 깨끗하냐?’고 세상은 공격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 역시 흠이 있고 온전하지 않기에, 결국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큰 피해를 보고 희생 당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와 사회 전반에서 그런 일이 영적 전쟁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불의에 맞서지 않는 세상과 시대와 사회... 이렇게 세상은 지금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현실의 어려움에 명쾌한 신앙의 정답은 없습니다. 보이는 혹독한 현실 앞에 무조건 믿음으로 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좀 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불의한 세상에 저항하고, 또 그런 저항 속에 기꺼이 희생되는 한 사람이 될 것을 마음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치를 대가를 미리 계산하고 또 대가를 치르면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과 노력을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생각하면서 다시 오늘 말씀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처음 4개의 인은 구약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4가지 심판과 재앙을 연상케 합니다.
첫째 인을 떼니 흰 말을 탄 자가 나옵니다. 그는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합니다. 이 흰 말을 탄 자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몇몇 주석은 이 인물을 악한 인물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인물을 19장에 나오는 백마를 탄 자와 동일시하여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 혹은 그가 가지신 복음의 힘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말의 때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고 계시고 복음은 온 세상을 정복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네, 물론 이런 해석도 가능하긴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이런 견해는 소수입니다.
반면 대부분의 주석은 이 인물을 악한 인물로 봅니다. 왜냐하면 이 4명의 말 탄 자는 같은 특성과 성품을 가진 4인조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뚜렷한 구약 배경이라 할 수 있는 스가랴서에도 4명의 말 탄 자가 등장하는 데, 모두 같은 성격의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이 구약 말씀을 인용하고 암시할 때 그 맥락을 바꾸지 않았으리라 믿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을 떼시는 주체자이신데, 그렇다면 그 떼신 인의 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첫 번째 인물이 누구일까요? 우선 이 자는 그 모습을 그리스도와 비슷하게 한 점이 분명 있습니다. 흰 말을 탔다는 것이 그것이죠. 요한계시록에서 흰 색은 대부분 정결과 의로움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첫 번째 인물은 그리스도를 흉내 내면서 사람들 앞에 자신을 의롭게 드러내고, 그러면서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는 악한 인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인물은 사람 앞에 서는 그 특성상 특히 정치 및 종교의 영역과 관계가 깊습니다.
이 인물이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려고 하는 모습은 정복과 전쟁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전쟁뿐만 아니라 영적인 전쟁을 다 포함합니다.
따라서 이 인물은 적그리스도, 마귀의 악한 세력, 혹은 마귀의 사주를 받는 악한 정부나 정치 종교 지도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로 말하면, 지배적이고 정복적인 로마제국과 그 황제들입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일수록 악한 영들이 가장 활발하게 역사하는 곳은 정치와 종교의 영역입니다. 요한 당시에 로마제국과 로마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것처럼, 오늘의 말세에도 국가와 정치 지도자는 마귀의 그림자가 되어 교회를 박해하고 세상에 혼란을 주고 전쟁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무분별한 악한 정치는 전쟁과 혼란 등 많은 종말론적인 일들을 이 땅에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지도자를 선택하고, 악한 정치와 악한 지도자에 예속되거나 휘둘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한편 악한 정치는 주로 국가적인 영역에서 일어나지만, 그러나 그보다 작은 우리 실생활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힘과 권력과 지위와 계급이 있는 모든 곳에 악한 정치가 있습니다. 회사, 정부기관, 학교, 병원, 언론과 방송, 노동계, 문화예술계, 교회와 교단... 악한 정치는 사람들을 누르고 삼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악한 정치, 즉 권력을 악하게 휘두르는 행위에 자의든 타의든 가담하거나 예속되어선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신자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악한 정치를 하는 교묘한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옳고 그름을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자기도 모르게 악한 정치를 하거나 악한 정치에 빠져 있지 않는지 늘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사탄이 역사하는 이 악하고 어지러운 정치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무엇이 의로운 길인지 늘 찾는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주에 계속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