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기도 1
계 5:8, 6:9~11, 8:3~5
2021.11.19.
방금 읽은 세 군데의 본문은 기도에 대한 요한계시록의 주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찬양과 예배에 대한 말씀이 풍부한 반면, 상대적으로 기도에 대한 말씀은 이 세 군데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 세 말씀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먼저 5장의 말씀은 어린 양이신 예수께서 그 두루마리 책을 취하실 때에 4생물과 24장로들이 그분 앞에 경배하는데, 그때 그들이 각각 거문고와 기도의 금 대접을 가졌다고 묘사합니다. 금 대접의 기도는 성도들의 기도이죠. 여기에 성도들의 기도가 처음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6장의 말씀은 성도들의 기도의 내용입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만약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이 말씀을 본다면, 이것은 마치 복수를 원하는 기도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 없는 성도들을 박해하고 죽인 그들의 죄와 불의에 대해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심판하시기를 요청하는 기도이죠. 그래서 이 기도는 복수가 아닌, 하나님의 심판과 정의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마지막으로 8장의 말씀은 드려진 성도들의 기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말씀합니다. 천사가 성도들의 기도를 담은 금 향로를 금 제단에 드립니다. 금 향로의 향이 피어오르면 향연과 함께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천사는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쏟는데, 그러자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땅에 쏟아지게 됩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기도가 응답되어, 하나님의 심판이 땅에 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의 내용이 오늘 본문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입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통해 요한계시록이 기도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선 요한계시록은 기도에 대해 많은 것을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된 성도들의 기도를 보여주고, 또 그 기도가 거룩한 향으로 하나님께 올려지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의 이 짧은 기도 말씀이 우리의 기도 생활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기도에 대해 말할 때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을 자주 인용하는 편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 천사가 우리의 기도를 금 대접에 귀하게 담아 하나님께 올린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이렇게 하나님께 거룩한 향으로 올려진다...’ 이렇게 말씀하면서 기도를 거룩한 것으로 강조하고 기도 생활을 잘할 것을 권면합니다. 여기서 기도생활을 잘하라는 말은 대개 기도를 많이 하라는 의미이죠.
그리고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 기도할 때 ‘기도의 분량이 차야한다’는 말씀도 자주 합니다. 오늘 읽은 6장 본문에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는 말씀이 있죠? 이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는 말씀을 ‘기도의 분량이 차야한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죠. 이 말 또한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대체로 많은 분들이 기도에 대한 이런 권면에 익숙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분들이 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미묘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기도는 그 자체로 거룩한 것으로 다 하나님께 올려진다. 둘째, 기도는 되도록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기도에 대한 이와 같은 미묘한 오해를 바로 잡고, 무엇이 올바른 기도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가 올바른 신앙을 위해 오래 생각해온 주제 중 하나가 기도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라고 한국 교회의 성장과 쇠퇴를 보면서, 나름 여러 의문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면서, 만일 우리의 기존 신앙이해에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고쳐야 새로운 신앙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구원론, 교회론, 성령론 등에서 우리가 잘 못 아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파악하고 고쳐야 발전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주제 중 하나가 기도입니다. 한국 교회는 오래도록 기도를 많이 하고 기도에 특별한 열정과 헌신이 있었죠. 새벽기도를 하고 금요철야기도를 하고 금식기도를 하고... 한국교회는 언제나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 한국교회는 많이 망가져 있고 왜곡된 신앙과 상식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지금 상당한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한 우리 교회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도와 신앙은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많이 할수록 좋은 신앙이 된다고 생각하죠. 물론 그렇죠. 기도는 좋은 것이죠.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항상 절대적으로 우리 신앙을 좋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한국교회의 역사와 현실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도를 많이 했는데, 성장도 멈추고 능력도 잃고 세속적인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분명합니다. 기도는 좋은 것이지만, 기도 자체를 절대시하거나 기도 시간 자체를 절대시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첫째, 우리는 기도 자체를 절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요한계시록 말씀을 통해 기도 자체를 거룩한 것으로 미화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다 천사의 금 대접에 담기고, 금 향로의 향과 함께 하나님께 올려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내용 불문하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올려진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심판을 요청하는 성도들의 정당한 기도가 하나님께 올려진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기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가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는 이 말씀을 알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모든 기도가 내용 불문하고 당연히 그렇게 하나님께 올려진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사실 얼마나 많은 기도를 우리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이기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기도 하고, 시험을 칠 때 ‘합격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기도 하고, 집이나 물건을 살 때 ‘싸게 사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내 입장만 담긴 이와 같은 일방적인 기도가 하나님께 계속 전달된다는 것은 인격적이신 하나님께 큰 고통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내 입장만 담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불필요한 기도도 많이 합니다. ‘버스나 기차를 타면서 늦지 않게 해주세요, 혹은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해주세요...’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할 때가 있죠. 그러나 내 책임의 문제를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 책임의 문제인 이런 경우는 기도하기 보다는 나의 생활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그것이 더 좋은 행동이고, 더 좋은 신앙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예배 드릴 때에도 ‘예배 잘 드리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도 불필요한 기도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려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보다는 우리가 미리 준비하고 정신을 차려야 잘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선택과 책임을 하나님께 미루는 기도를 하지 않도록, 기도의 내용을 잘 살펴야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너무 많이 합니다. 노력을 안 하고 ‘잘 되게 해 주세요’, 준비를 안 하고 ‘좋은 결과 되게 해 주세요’... 공부나 시험이나 사업이나 혹은 교회건축을 하면서 이렇게 무리한 기도를 하면 결과가 좋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기도가 나의 노력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는 기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존재도 아니고, 우리의 기도도 늘 거룩한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 내 책임을 회피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는 잘못된 기도를 많이 드립니다. 그런 기도들은 하나님께 상달되고 응답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정당한 기도인지 항상 기도의 내용을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라’ 말씀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성경 말씀의 지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아울러, 기도의 내용만 바르다고 좋은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려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은 의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른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도 막히게 됩니다.
베드로전서에는 우리의 기도가 막힌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우리가 잘못된 삶을 살면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더라도, 하나님에게 상달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기도자가 되고, 우리의 기도가 좋은 기도가 되려면... 기도의 내용이 정당하고 동시에 우리 삶이 건전해야 합니다. 그간 한국교회는 기도 행위만 강조했지, 상대적으로 기도의 내용과 기도를 뒷받침 하는 삶을 강조하지 못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기도의 내용과 삶을 바르게 가지심으로 진정한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주에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