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와 어린 양 1
계 5:1~14
2021.11.05.
오늘 본문은 하늘에서 일어난 매우 중대한 사건입니다. 얼핏 보기에 이것은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인봉한 두루마리를 받으시는 장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러고보면 좀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두루마리를 받는 단순한 이 일에 4생물과 24장로와 수많은 천사와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이 다 나와 어마어마한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 하나를 묘사하는데 요한계시록 5장 전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루마리 책을 받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두루마리 책을 받는 일이 아닙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사건은 다니엘서 7장과 같은 사건입니다.
다니엘서 7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받으시는 말씀이죠. 계시록 5장과 다니엘서 7장은 비록 세밀한 부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주요 장면 즉 하나님의 보좌에서 심판이 이루어지고 책이 등장하고 예수님께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시는 장면이 동일합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다니엘서의 묵시와 환상을 깊이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계시록 5장은,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 다니엘서 7장에 대한 해석이자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사건은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단순히 두루마리를 받으시는 사건이 아니라,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받으시고 진정한 왕으로서 보좌에 앉으시는 취임식 사건을 의미합니다. 네, 오늘 본문인 요한계시록 5장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취임식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의 시간은 언제일까요? 이것은 이루어진 일일까요? 아니면 앞으로 일어날 일일까요?
요한계시록 4장 이후를 미래주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분들은 이것이 최후의 심판 때에 이루어지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런 관점이 아니라 시작된 종말의 관점으로 계시록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후 세상의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죠. 그래서 그런 시작된 관점으로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 사건은 최후의 심판 날에 이루어지는 미래 사건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언제일까요? 언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받으시고 왕으로 보좌에 앉으셨을까요?
네, 그것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요한계시록 안에서도 이 사건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1:5을 보면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또 3:21을 보면 예수님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들은 예수님이 이미 하나님 나라를 받으시고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로 하늘 보좌에 앉으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때 하늘에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왕으로 앉아 계시죠.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은 스데반 순교 때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일어서신 것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은 지금 왕으로서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한편, 이 예수님의 하늘 취임식은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는 인봉한 두루마리 책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그 책을 받으시고, 또 인봉을 해제하여 그 책을 펼칠 수 있는 권한을 받으시고 보좌에 등극하는 것이죠. 예수님의 취임식과 이 책은 매우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루마리 책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 두루마리 책이라 말씀드렸는데, 우선 사실 두루마리와 책은 엄연히 다릅니다. 두루마리는 코덱스라고 하는 책이 나오기 전의 문서나 책의 일반적인 형태였죠. 그것은 짐승의 가죽위에 글을 적고 돌돌 말아 끈으로 묶는 모양입니다. 중요한 유언장이나 계약서 같은 두루마리는 촛농 같은 것으로 봉하고 그 위에 일곱 번 도장을 찍어 봉인합니다. 이에 비해 코덱스는 지금 우리가 흔히 보는 일반적인 책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이 두루마리냐 아니면 책이냐 하는 논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이 하나씩 떼어질 때마다 그 내용이 하나씩 밝혀진다는 점에서, 또 다니엘서는 그것을 책이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또 우리도 그것을 흔히 하나님의 생명책으로 많이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책이냐 아니면 두루마리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두루마리냐 혹은 책이냐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세밀히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환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고 또 어디까지나 그 안의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책이나 두루마리의 어느 쪽으로 보셔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오늘 본문이 두루마리로 말씀하기 때문에 두루마리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두루마리는 과연 어떤 두루마리일까요? 과연 어떤 두루마리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취임하시면서 이 두루마리를 받으시는 걸까요? 그리고 왜 요한은 처음에 이 두루마리를 펼칠 자가 없다는 사실에 크게 절망하고 울었던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대략 다섯 가지 정도의 견해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이 두루마리를 ‘하나님의 생명책’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생명책은 계시록에 여러 번 나오고 시편이나 빌립보서에도 나옵니다. 그래서 이 두루마리를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안팎으로 빼곡히 기록된 생명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이 두루마리를 ‘구약성경’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구약의 예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구약성경의 참된 의미를 열어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두루마리를 ‘미래의 대환난 사건들의 책’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책의 인봉이 하나씩 떼어질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이 쏟아져 나오죠. 그래서 주로 미래주의 해석을 선택하는 분들은 이 책을 이와 같은 의미로 봅니다.
이렇게 전통적인 세 가지 견해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의 전통적인 견해는 그리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진정한 정체는 인봉이 하나씩 뗄 때마다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루마리의 인봉이 하나씩 해제될 때마다 일어나는 일들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일들을 따라 가보면, 우리는 인봉이 떼어지는 6장 이후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환상으로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환상들, 즉 음녀의 심판과 바벨론의 패망과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마지막 새 예루살렘까지... 모두 다 이 일곱 환상 시리즈를 토대로 하는 연속된 내용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6장 이후 요한계시록의 모든 환상들은 다 이 두루마리의 환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루마리에 담겨져 있는 내용은 6장 이후 요한계시록 전체라 할 수 있고, 그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입니다.
따라서 이 두루마리를 단순히 ‘생명책’이나 ‘구약성경’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생명책이나 구약성경은 이 두루마리의 인이 떼어지면서 일어나는 내용과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이 두루마리를 ‘미래 대환난의 책’으로 보는 것도 적절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봉이 떼어지면서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기 때문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이 더 중요한 내용입니다.
네, 그래서 요한이 울었습니다. 요한은 단순히 이 두루마리를 펼 수 없어서 운 것이 아닙니다. 이 두루마리가 펼쳐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진행되지 않기에 울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박해받는 교회와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생각할 때 오직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만이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책을 펼칠 사람이 없다고 하니 절망했고 울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유업(유언)의 책’으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등극하시면서,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심판과 구원을 완성하는 이 두루마리를 유언 혹은 유업처럼 전달받으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두루마리를 하나씩 펼치시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행하시고 마침내 역사를 완성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갈 때, 오늘의 세상과 오늘의 역사를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잘못된 세상과 거짓된 현실과 왜곡된 역사... 우리는 그런 답답하고 어두운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시대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왕이신 예수님께서 그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인봉을 하나 하나 떼시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행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주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믿으시고, 깨어있고 의롭게 살아가는 여러분들 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