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에베소교회의 처음 사랑 1

믿음찬교회 0 322 2021.08.24 13:21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 1
계 2:1~7
2021.08.20.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 지역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 도시로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또 에베소는 소아시아 지역을 관할하는 로마 총독부가 있는 정치의 중심지였고, 또 2만5천명을 수용하는 원형극장과 고대 3대 도서관 중 하나인 셀수스 도서관 등이 있는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무엇보다 에베소는 로마 제국의 주요 신전들이 있는 종교 및 예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신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데미 신전인데, 그 신전은 약 18미터 높이의 돌기둥 120여개로 이루어졌고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보다 2배 이상 컸다고 합니다. 당시 에베소의 인구는 약 25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이런 도시의 규모 및 중요성으로 인해 에베소는 로마제국 내에서 제3의 도시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참고로 당시 제2도시는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

에베소는 이런 도시였기 때문에 일찍이 바울은 이곳을 선교의 중심지로 생각하였습니다. 2차 전도여행의 말미에 고린도를 떠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에베소에 잠깐 방문하고, 그 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에서 에베소에 돌아와 3년간 머무르며 그 도시에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바울 이후 에베소 교회는 디모데의 지도를 받았고(딤전1:3), 그 이후는 사도 요한의 지도를 받은 것으로 전해져 옵니다. 그런데 만약 요한계시록의 저자를 제3의 요한으로 본다면, 사도 요한과 별개로 그분의 지도도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에베소 교회는 세워진지 약 40~50년 후, 오늘 본문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맨 먼저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편지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해 이것은 편지가 아니고 예언적 메시지입니다.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영적 진단과 개혁적 요구가 담겨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칭찬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이 문장은 이렇게 해석됩니다. “나는 너의 행위를 안다. 즉 네가 교회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수고한 것과 교회로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참고 인내한 것을 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다른 칭찬도 하십니다.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교회가 거짓을 분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분별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면... 그때나 지금이나 분별을 잘 하지 못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분별을 잘 하지 못하는가... 첫째, 무슨 말을 해도 은혜로 여기고 ‘아멘’하는 교회는 분별이 어렵습니다. 둘째, 무슨 일을 해도 사랑과 은혜로 적당히 넘어가는 교회는 분별이 어렵습니다. 셋째, 성경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인간적인 설교를 하는 교회는 분별이 어렵습니다. 넷째, 열심만 강조하고 분주하기만 한 교회는 분별이 어렵습니다. 다섯째, 알고 기도해야 하는데 모르고 기도하는 교회는 분별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잘 분별하는 교회였습니다. 다른 교회들은 니골라 당의 교훈에 빠지고 발람의 교훈에 빠지고 이세벨의 가르침을 용납했지만, 에베소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3절에서 계속 됩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이것은 앞서 말씀하신 에베소 교회의 수고와 인내를 다시 한 번 칭찬하고 인정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에베소 교회는 교회 본연의 일과 사명에 충실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이어지는 말씀에서 단 한 가지 안타까움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이 두 번의 말씀에서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는 같은 의미로 여겨집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에베소 교회의 단 한 가지 부족한 점... 그러나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책망을 하나만 받았다고 가볍게 생각할 상황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만일 그 문제를 회개하지 않으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경고하시기 때문입니다. ‘촛대를 옮기겠다’는 것은 교회로서의 지위와 자격을 거두시겠다는 것이죠. 이것은 교회로서의 사망 선고에 해당하는 최후의 경고라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일곱 교회의 전체 구조에 있어서 에베소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그룹으로 분류된다는 사실로도 확인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신, 처음 사랑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대체로 다음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 둘째, 서로를 향한 형제자매적인 처음 사랑. 셋째, 이웃과 세상을 향한 복음의 처음 사랑. 넷째, 신앙의 본질로서의 처음 사랑.
이 네 가지는 모두 가능성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당시의 시대적인 물결이었던 로마의 황제숭배 체제에 타협하고 적응했다면, 하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은 것이 됩니다. 에베소 교회가 거짓된 것과 거짓된 자를 분별하고 비판하고 의심하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잃었다면, 형제자매적인 처음 사랑을 잃은 것이 됩니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에 세상에 복음을 열심히 증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내향화되고 그 사랑과 열정을 잃었다면, 복음의 처음 사랑을 잃은 것이 됩니다. 에베소 교회가 과거에는 신앙이 뜨겁고 순수했지만 점점 그 신앙생활이 형식과 제도와 율법이 되었다면, 신앙의 본질로서의 처음 사랑을 잃은 것이 됩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 중 어느 경우에 해당할까요? 아쉽게도 예수님께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에베소 교회는 이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문제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이 부분을 보아도 추정만 할 뿐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한다면, 네 번째가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첫째,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에베소 교회의 수고와 인내는 설명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에베소 교회가 황제숭배와 타협하여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황제숭배와 타협한 교회에 하시는 말씀과 에베소 교회에 하시는 말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당을 미워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발람의 교훈과 이세벨의 음행과 같이 황제숭배를 옹호한 가르침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둘째, 에베소 교회가 거짓 가르침과의 싸움과 분별 때문에 서로를 향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견해도 가능성이 낮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비판하거나 분별하면 그것은 사랑과 은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입니다. 자의적인 판단이나 비판은 문제이지만, 올바른 분별이나 비판은 성숙한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가 잘못된 것을 분별하고 비판하느라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을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인 것 같습니다.
셋째, 에베소 교회가 복음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보는 견해도 가능성이 낮습니다. 물론 여러 주요 주석들이 이 견해를 지지합니다. 그 주석들은 그 근거로 촛대를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유독 촛대와 관련이 깊은데, 예수님께서 이 교회에 나타나신 모습에도 촛대가 있고 경고하신 말씀에도 촛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촛대는 빛을 밝히는 것으로 복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면서, 그것이 에베소 교회의 문제가 복음의 처음 사랑임을 말해주는 단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촛대의 의미를 복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수고하고 게으르지 않은 에베소 교회가 복음의 처음 사랑을 잃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에베소 교회는 어디에 수고를 했을까요? 설마 자신들끼리 모이고 예배하고 교제한 것을 예수님께서 수고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는 겉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배와 모임도 그대로이고, 수고와 인내도 그대로이고, 거짓과 악을 분별하는 것도 그대로입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봉사와 선한 일을 하고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뀐 것은 없고 모든 활동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의 영적인 실상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그 교회가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것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들의 내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것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들 신앙의 본질에 어떤 중대한 변질이 일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에베소 교회가 신앙의 본질로서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봅니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사랑이라는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이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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