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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1)

믿음찬교회 0 141 2023.11.13 12:25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1)
막 2:21~22
2023.11.10.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오랜 금식 전통에 대해 반대하셨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의 그 반대는 단순히 금식 전통 하나를 반대하신 것이 아니라 성전과 율법 신앙 전체에 대한 반대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안식일 전통에 반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전과 율법 신앙 전체에 대한 반대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과 성전은 그 존재 시한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그것들을 대체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습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과 계시입니다. 그리고 새 부대는 그 새로운 말씀과 계시를 담는 새로운 신앙 형식과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초점은 새 포도주가 아니라 새 가죽 부대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를 주시고, 우리는 그 새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잘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바로 이 새 가죽 부대입니다.

그럼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제가 한번 인터넷에서 오늘 본문에 해당하는 설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새 부대를 무엇이라 말하는지 알아보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많은 설교가 새 부대를 잘 말하지 않았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만을 말하지, 그 새 부대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잘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일부 설교가 그 새 부대를 우리의 새로운 마음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새 포도주가 부어진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내용입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새 부대는 율법과 성전을 대체하는 우리 신앙의 새로운 형식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우리 신앙의 새로운 형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 전체를 다 말할 순 없지만, 중요한 3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이해하면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새로운 신앙 내용을 잘 담을 수 있습니다.     
첫째, 새 부대는 성전이 아니라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계획하고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은 이스라엘의 오랜 신앙의 중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여호와 신앙의 두 축은 성전과 율법입니다.
한 마디로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죠. 그들은 그곳이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아닌,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유대 백성의 신앙의 자신감은 바로 이 성전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적군이 쳐들어와도 절대 이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질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전은 그들 신앙의 절대적인 중심이었습니다.
또 성전은 그들 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각종 제사와 절기와 안식일 및 국가의 대소사가 다 성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더 말할 필요가 없죠.
나아가 무엇보다 성전은 그들 다윗 왕조의 중심이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할 때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내가 네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그래서 성전은 다윗 왕조와 분리되지 않는 국가적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성전은 그들의 신앙과 삶과 국가 등 모든 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절대적인 성전을 예수님을 통해 깨끗이 무너뜨리셨습니다.
그것은 성전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인간 종교의 부패한 처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성전에 더 계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성전 문 앞에 서서 이 성전은 여호와의 성전이 아니라고 선포하였고,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윗과 솔로몬 성전을 청산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들에게 새로운 성전을 주시게 되는데, 그 새로운 성전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이제 신약의 성전은 보이는 성전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성전이 됩니다.
그래서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 그곳이 바로 신약의 성전입니다.
그러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이 어디입니까?
네,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인 곳... 그곳이 어디라도 바로 그곳이 교회가 됩니다. 이것이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교회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보이는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눈에 보이는 공식 성전이 존재하지 않는, 영적인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 무엇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연약한 사람은 보면 믿을 수 있지만, 안 보면 잘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기독교 신앙은 다시 옛 방식으로 돌아가 언제나 보이는 성전을 크고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유럽에 가면 거대한 대성당들이 많죠. 도시마다 대성당들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은 성전을 지으려는 그런 건축물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처음엔 가정에서 모이고 작은 장소에서 모였지만, 성장을 하면서 앞다투어 큰 교회를 지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대형교회가 즐비합니다. 중소형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교회를 크고 아름답게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교회는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를 성전처럼 지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우리 신앙의 많은 부분은 교회 건물 중심의 옛 신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전이 군림했던 옛날처럼 교회가 군림하고 목회자가 군림하고... 그렇게 많은 한국교회는 보이는 교회 중심의 옛 신앙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옛날 성전당국처럼 신자의 삶과 신앙을 주관하고, 목회자는 제사장처럼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 서서 좌지우지하고, 예배가 지나치게 중심이 되고, 교회 가르침이 성경보다 앞서고, 교회 소속이 구원을 보장하고... 그러므로 이런 모든 모습들은 우리 신앙이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만약 옛 신앙으로 돌아간다면, 예수님의 새 포도주는 부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옛 성전의 모습을 극복하고 예수님이 세우신 새로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자체가 중심이 되거나 목회자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중심으로 모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 말씀과 가르침을 가지고 우리의 구원과 성화를 함께 이루어 나가는 구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를 이루며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를 이루려면 무엇보다 목회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목회자는 결코 구약의 사제나 제사장이나 무당이 되려고 해선 안 되고,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좋은 목자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개혁이 계속 실패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그런 신약성경적인 교회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포도주인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잘 받기 위해, 제일 먼저 우리의 교회를 살펴야 합니다.
교회는 결코 성전이 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인 되시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조직과 제도로 교회를 이루고, 계급과 차별을 만들지 말고, 돈과 물질이 중심이 된 교회가 되지 말고, 은사를 따라 수평적인 교회가 되고, 말씀과 은혜를 통한 자발적인 성숙한 교회가 되고, 함께 신앙을 세워나가는 참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신약성경적인 교회를 만들기 위해 늘 노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주에 이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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