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너는 내 아들이라

믿음찬교회 0 78 2023.08.06 12:03
너는 내 아들이라
히 1:5~14
2023.08.06.

히브리서는 오늘 본문부터 본론이 시작됩니다. 본론의 첫 번째 주제는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는 7개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천사보다 뛰어나신 분인지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이 내용을 통해, 히브리서 기자가 구약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리고 그 해석 안에 예수님에 대한 어떤 신앙적인 생각과 믿음을 품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아마 우리 성도님들 대부분은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님을 천사보다 뛰어나신 분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잘 공감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건 너무 당연한 건데, 그걸 이렇게 길고 자세하게 말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드시죠?
네, 그것은 오늘날 우리는 천사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이유는 그 역할이 더 귀하신 성령님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또 우리에겐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지금 우리는 신약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천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천사의 중요성은 매우 컸습니다. 구약에서 천사는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천사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을 모세에게 전해준 존재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밖에 당시에 천사를 여전히 중요시한 일은 골로새서에서도 발견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네, 그 교회 안에 천사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천사를 숭배해야 한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히브리서 당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사는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대리하는 중요한 존재이자 메신저로 생각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와 메신저였던 천사와 비교하면서, 그보다 더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우월성을 말씀하는데, 그런데 이 내용이 앞서 서론에서 말씀한 것과 거의 동일합니다.
첫째, 5~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과 만유의 상속자되심을 말씀합니다.
둘째, 10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함께 한 창조주이심을 말씀합니다.
셋째, 11~1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체이심을 말씀합니다.
넷째, 1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음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서론에서 이미 말씀한 내용을, 구약 말씀을 통해 보다 확실하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여기서 인용하는 구약 말씀은 당시에 잘 알려진 구약의 메시아 구절들이고, 또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경험한 교회와 신자들이 새롭게 발견한 구약의 메시아 구절들입니다. 이제 이 7개의 구약 말씀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첫 번째로 인용하는 말씀은 시편 2:7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시편 2편은 대표적인 메시아 시편입니다. 누구라도 시편 2편을 읽어보면, 이 말씀은 미래의 메시아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대표적인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메시아이시고,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이라는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얻으셨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두 번째로 인용하는 말씀은 삼하 7:14입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본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을 통하여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고,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히 하고, 또 나는 솔로몬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아들은 직접적으로 솔로몬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몇 가지 이유로 이 아들은 궁극적으로 메시아를 가리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에 바로 앞에 다윗의 몸에서 날 씨에 대한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래서 하나님은 이 씨에 대한 약속을 먼저 하신 후에, 그 후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하는 것과 또 그의 왕위가 영원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다윗의 몸에서 날 씨로서 약속된 인물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그런 하나님의 약속과 함께 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예언이 궁극적으로 메시아를 가리키는 예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결국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무너지고, 다윗 왕조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삼하 7장의 하나님의 예언은 당시 솔로몬과 솔로몬 성전과 다윗 왕조를 가리키는 예언 같았지만, 사실은 예수님과 예수님이 세우실 영적인 성전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메시아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삼무엘하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로 확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6절에서 세 번째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런데 세 번째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런 설명을 먼저 덧붙입니다.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여기서 우리는 ‘세상’이라는 단어에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을 가리키는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히브리서 2:5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장차 올 세상’을 가리킵니다. 즉 역사의 마지막 날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세상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를 통해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심으로 그 하늘의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취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6절 말씀의 의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그런 하늘의 하나님 나라, 즉 장차 올 세상에 영광스럽게 다시 들어가실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천사에게 그에게 경배하도록 말씀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여기서 ‘모든 천사들이 경배하도록 말씀하셨다’는 이 말씀의 출처가 분명치 않은데, 학자들은 이 말씀의 출처를 시편 97:7 혹은 신 32:43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막상 신 32:43을 찾아보면 이 내용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내용이 지금 우리 구약성경이 바탕을 두고 있는 구약 맛소라 사본이 아닌 쿰란 사본과 칠십인역 성경에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쿰란 사본과 칠십인역에는 하나님의 아들들, 즉 천사들이 여호와를 경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한 하나님으로 여기면서, 천사들이 그에게 경배한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7절에서 네 번째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이 말씀은 그냥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8~9절에서 다섯 번째 말씀을 인용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다...” 이 말씀은 시편 45편인데, 메시아적 왕을 찬양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시편 45편을 읽어보시면, 왕을 찬양하는 그 말씀에서 좀 이상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왕을 찬양하는 말씀이 이어지는 도중에 갑자기 6절에서 “하나님이여”라고 하나님을 부르고, 그리고는 다시 왕을 찬양하는 말씀이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여’ 라고 부르는 시 45:6절 부분이 조금 이상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여기서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는 대상은 사실 하나님이 아니라, 메시아적 왕을 가리킵니다. 메시아적 왕을 가리켜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 45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언적 시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 시편 45편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것과 그의 보좌가 영원하다는 것과 무엇보다 그가 이 땅에 계실 때에 메시아로서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며 사역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께 기름을 부으시고, 그분을 하나님의 사역의 동류들 즉 천사들보다 뛰어난 존재로 높이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해석하면서 그 말씀들을 예수님에게 적용하는 내용이 잘 이해되십니까? 예수님을 예언한 이 구약 말씀들은 대체로 복잡하고 어려운 말씀들이죠. 그래서 설명이 많이 필요한데, 그러나 제가 가능한 짧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구약 말씀이 어떻게 그렇게 해석되는가 하는 문제는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시고, 다만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그 구약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거기에 주목하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10~12절에서 여섯 번째 구약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 말씀은 시편 102편인데, 어떤 익명의 고난 당하는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고통과 탄식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 안에는 이 세상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행하실 궁극적인 구원을 바라보는 특별한 예언적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하는 이 말씀은 시편 102편의 그와 같은 특별한 예언적 내용인데, 그 의미는 지금의 하늘과 땅과 우주는 마지막 날에 옷과 같이 낡아지고, 그래서 마치 사람이 낡은 옷을 말아서 치우고 새 옷을 입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렇게 새로운 하늘과 땅과 하나님 나라를 펼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이 시편은 전통적인 메시아 시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 102편에서 말씀하는 주는 메시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그 주님을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바꾸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 구약 말씀을 감히 그렇게 재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마지막 때에 그 구원을 완성하실 주님은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임받으셨는데, 우주적 구원을 완성하신 후에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을 아들에 대한 말씀으로 온전히 여깁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가 여기서 결국 말씀하는 내용은 우주적 구원이 이루어질 때 하늘과 땅은 그렇게 낡아지고 바뀌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의 본체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13절에서 일곱 번째 구약 말씀을 인용합니다.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이 말씀은 시편 110편입니다. 시편 110편은 가장 유명한 메시아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히브리서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 여러 곳에서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이 말씀을 직접 인용하셔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그렇게 그 자리에서 통치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완성해가신다고 말씀합니다.
이상으로 이렇게 우리는 7개의 구약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가 이 모든 구약 말씀을 인용하고 해석한 결론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와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천사나 천사가 전해준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길었지만, 이상과 같이 오늘 본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으로부터 어떤 교훈과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네, 우리는 예수님께서 천사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잘 알아야 하겠죠. 그런데 우리는 그때의 유대인 신자들과 달리,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잘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그런 은혜와 교훈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내용에서 은혜와 교훈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안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 하나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은혜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 본문 안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말씀하면서 예수님의 여러 모습을 말씀합니다. 그분이 태초에 어떤 분이셨는지, 그리고 그가 성육신하여 이 땅에 계실 때 어떤 분이셨는지,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어떤 분이 되셨는지... 그런 여러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그 모든 순간에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특별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언제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아들이라고 인정하시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 기름을 부어 예수님을 다른 어떤 존재보다 뛰어난 존재로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또 한 번 아들로 선언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아들인 예수를 다시 기름 부어 높이셨다는 사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불필요한 일을 행하셨을까요? 그리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그 내용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라” 예수님은 더욱 아름다운 이름, 즉 아들이라는 이름을 얻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아들이라는 이름을 얻으셨다니... 히브리서 기자는 아주 외람된 말씀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 내용을 5장에서 다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그런데 이런 말씀은 로마서에서도 발견됩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3~4)
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서의 삶과 사역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의 아들로 온전히 선포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너는 내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포하시는 은혜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자신의 사명과 사역을 충실히 감당하시고 고난의 십자가를 통과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시며 하신 인정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매우 값비싼 말씀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이 말씀을 그저 은혜와 감사의 말씀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ccm중에 “너는 내 아들이라”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그 찬양은 그렇게 우리가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쓰러지고 눈물 흘릴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눈물을 닦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십자가 고통으로 너를 낳았으니, 너는 언제나 변함없이 내 아들이라”
그 찬양은 비록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수님은 언제나 크신 사랑과 은혜로 연약한 우리를 아들이라고 불러주신다는 것입니다. 참 은혜가 되는 찬양입니다.
그러나 이 찬양은 안타깝게도 그 말씀의 정확한 의미가 아닙니다. 정확한 의미가 아닐 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에 큰 오해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저 은혜로 너는 내 아들이라 선언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온갖 어려움과 모욕을 감당하시고 이 땅의 죄와 어둠과 싸우시고 말씀을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그래서 너는 내 아들이라고 인정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시고, 천사들로 하여금 경배하게 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말씀은 그저 은혜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사람이 듣는 하나님의 인정의 말씀인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내 아들(딸)이라’ 라는 말씀을 듣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순종하시고 어려움과 고난을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어려움과 고난을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필연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음대로 살며 거짓말도 하며 자기 유리한 대로 살지만, 우리는 정직하게 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손해를 보고 불이익도 보고 소외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비열하고 악한 공격을 받지만, 인내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맞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악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노력하고 더 수고하고 더 눈물과 땀을 흘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들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하고, 신자는 신자다워야 합니다. 시기하고 경쟁하고, 돈을 쫓고, 영광을 탐하고, 높아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내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살고, 또 나 개인에게 주신 개인적인 어려운 삶을 잘 감당하며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그때 우리에게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처럼 “너는 내 아들(딸)이라” 선언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고 시작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구원받은 삶을 살아가야 하고, 그러면 그 과정에는 예수님의 생애처럼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교회를 나오고 신앙생활을 하고 기도를 하고 헌신을 하고 세상에서 벗어나고... 그런 믿음 속에서 우리는 우리 신앙을 지키게 됩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알기만 하고 관념적으로 믿고... 그렇게 예수님과 거리가 멀면, 어느 날 우리는 악한 사단의 손아귀에 빠지는 위기를 겪게 되고, 그때 우리는 우리에게 영적인 힘이 없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여러분, 구원의 삶을 쉽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하나님은 내가 아무것 하지 않아도 항상 은혜로 그렇게 말씀해주시고, 그러면 내 구원은 보장되어 있고 안심이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의 모든 인물을 다 살펴보아도, 그런 식으로 거저 구원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따라 구원의 삶을 신실하게 산 사람을 인정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지, 그저 예수의 공로로 예수의 대속의 깃발 하나 흔들며 천국 가려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값싼 구원을 성경의 구원으로 알고 있는 신자들이 오늘날 많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문제이든 우리 신앙이든 삶이든... 하나님의 참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어려운 과정과 삶을 거쳐야 합니다. 은혜는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은혜에 치우친 은혜 위주의 신앙은 우리 신앙을 매우 값싼 염치없는 신앙으로 만들게 됩니다. 지금 우리 많은 신자들은 그런 잘못된 신앙에 치우쳐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기만 좋아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반면에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을 위해 수고하고 살아가는 것은 모릅니다. 조금 힘들면 예수 안 믿고 하나님께 불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염치가 있다면 적어도 받은 은혜만큼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거기에 먼저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것이 없어도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최선의 삶을 살아갈 때,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어려움 속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때, 그때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너는 내 아들이다, 딸이다”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신실한 신앙과 삶을 살아가심으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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