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분별과 들음

믿음찬교회 0 74 2023.05.08 19:19
분별과 들음
요일 4:1~6
2023.05.07.

오래전 제가 아주 어릴 때, 아마도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나이 때, 저는 어머니와 이모님들의 손에 이끌려 한얼산기도원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한얼산기도원은 경기도 가평에 있는 기도원인데, 70~80년대에 아주 유명한 부흥집회가 있던 기도원입니다.
그 기도원이 그때 얼마나 유명했던지, 당시 ‘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기도원은 한얼산기도원’ 이런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천석 목사님이라는 분이 거기서 집회를 인도하셨는데, 말씀도 말씀이지만 치유와 기적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차범근 선수와 고은아 배우가 병고침을 받고 은혜를 받은 것으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때 EXPLO 74 이후 신앙생활이 뜨거웠던 서울 이모님들이 부산에 있던 저의 어머니까지 불러, 그 기도원 집회에 참석했던 것입니다. 저도 어머니를 따라 거기에 갔는데, 그때 거기서 저는 참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휴식 시간에 많은 참석자들이 강단 앞에 줄을 서서, 그 이천석 목사님께 자기가 받은 방언 은사가 진짜인지 확인받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방언하는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고 방언을 한번 해보라고 하고, 그래서 그 사람이 방언을 하면 들어보고, ‘맞다, 아니다’ 말씀을 해주는 것입니다. 한 사람당 약 10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맞다’고 한 사람은 ‘할렐루야’ 하고 내려오고, ‘아니다’ 한 사람은 그만 무안해져서 부끄럽게 내려왔습니다.
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읽다가 만 이천석 목사님 만화책을 손에 들고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제 눈에는 방언을 하는 것도 신기하고, 방언을 분별하는 것은 더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장면을 지금도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분별하는 것... 넓게 보면 그것도 영분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 교회들은 70~80년대 큰 부흥의 역사가 있었고, 그때 성령의 역사가 참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때는 교회마다 에너지가 넘쳤고 힘이 넘쳤습니다. 큰 교회 작은 교회 가릴 것 없이, 부흥되고 여기저기 성령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저도 작은 교회를 다녔는데, 전도사님도 없이 고등부 선배들이 인도했던 토요일 학생부 기도모임이 얼마나 뜨거운지... 그 볼품없는 예배당 뒤편 조그만 다락방이 기억에 납니다.
아무튼 당시 성령의 역사가 그렇게 활발하게 일어나니까 영분별의 필요성이 생기고, 그래서 제가 그 기도원에서 그 광경을 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볼 때, 먼저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1세기에는 성령의 역사가 매우 활발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예루살렘 교회가 생기고 사도 바울의 선교가 시작되고, 교회는 크게 부흥하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흥과 성령의 역사가 사도 요한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주 경험하고 아는 바와 같이,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사탄과 악한 영의 모방을 받게 됩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참된 성령의 역사를 모방하고 이용하고 속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래 그 존재들은 늘 그렇게 하는 거짓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사도 요한의 공동체 속에 그 악한 영들이 역사하여, 거짓된 가르침을 퍼뜨리고 신자들을 선동하고 그 가르침이 마치 참된 가르침이고 성령의 역사인 양 속였던 것입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들은 신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 신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이고, 인성을 가지신 예수는 진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있었던 예수는 인간 예수이고 예수의 환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가르침이 성령의 음성과 특별한 계시와 특별한 감동으로부터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배경 속에서, 지금 사도 요한은 공동체에 남아있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지금까지 사도 요한은 공동체를 깨고 나간 자들에 대해 많은 경계의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그들에 대한 마지막 최종적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네, 이 말씀을 짧게 줄이면 “영들을 분별하라”이고, 더 짧게 줄이면 “영분별”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영분별”이라고 하니까, 어떤 아주 어렵고 신비한 일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의 이 영분별을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은 한 개인의 영분별 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과 거짓된 가르침에 맞서 교회와 신자들 모두가 마땅히 영분별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영분별을 은사로 말한다면, 그것은 그 은사를 받은 분만이 잘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영분별은 그 은사를 받은 분만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모든 교회와 신자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거짓된 가르침과 악한 영의 미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분별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영분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이것이 만약 은사로서의 영분별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 방법은 조금 어려울 것입니다. 그 방법은 은사를 받은 분만 알고, 거기엔 분명 신비적인 요소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은사로서의 영분별 방법에 대해선 따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우리가 거기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이천석 목사님의 방언 분별에서처럼,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구분했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 은사를 받은 목사님은 아시겠지만, 우리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도 요한은 은사로서 영분별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자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영분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2절과 3절인데, 매우 간단합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말하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영이고, 예수님을 바르게 말하지 않는 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네, 사도 요한은 영분별의 방법을 어떤 신비적인 것으로 말씀하지 않고,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느냐 들어보고 분별하라고 말씀합니다. 즉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받아야 영분별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 바르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 영은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고, 세상의 영이고, 미혹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도 동일하게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하나님의 영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예수를 오직 주님으로 고백한다고 말씀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요한은 영분별의 방법과 기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 말씀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그 영들은 교묘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말하지만, 예수는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이고, 예수는 이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님이죠.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만 말하고 예수님의 인성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래서 바로 여기에 신자들이 미혹에 빠질 큰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적인 예수님만 추구하는 그들의 가르침과 주장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단히 잘못된 신앙을 만들게 됩니다. 그들은 신비하고 매력적이고 구원받기 쉬운 신앙을 만들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참되고 신실하고 진실한 신앙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의 이 말씀을 따라 영분별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보고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는가... 이것이 중요한 기준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자기 생각대로 함부로 이야기하고, 자신을 예수님과 동일시하고,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균형있게 말하지 않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이런 모든 사람과 가르침은 거짓되고 세상적이고 미혹적인 사람이고 가르침입니다.
이단에는 구원론 이단도 있고, 성령론 이단도 있고, 종말론 이단도 있고 여러 가지로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이단은 기독론 이단입니다. 우리 신앙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의 많은 강력한 이단들은 어김없이 자신들의 교주를 예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거기에 잘못된 구원론과 종말론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언제나 예수님을 바르게 아시고 붙드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 시대에 서서 좀 더 묵상하면, 한편으로 이 말씀을 정반대로 적용해야 할 필요성도 생깁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1세기와 정반대로, 예수님을 단지 인간으로만 보고 그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지금 그렇게 세상 속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시대 속에서 이 말씀을 이렇게 반대로 적용하여, 우리 마음속에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그렇습니다. 지금 사탄과 악한 영들은 이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의 실제 모습은 실패한 개혁가에 가까운데... 교회는 그런 실제 예수를 저버리고 신앙의 예수로만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신앙화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학자와 지식인들이 많습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기독교 집안 출신이고 기독교에 관해 많은 관심이 있는 분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다르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이와 같은 세상의 미혹에 맞서, 예수님의 신성과 주님 되심을 언제까지나 굳게 믿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세상의 영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영은 이 세상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혹의 영이고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이 영들은 시대의 환경과 지식과 문화와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삶이 바쁘고 어려우면 그것으로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고, 무신론이 부각되면 그것으로 예수를 배척하게 하고, 물질주의가 팽배하면, 그것으로 예수를 저버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우리는 그런 세상의 영과 미혹의 영을 잘 알아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바르게 분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의 첫 번째 메시지는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하라”입니다. 이어서 사도 요한은 이제 4절부터 또 다른 메시지를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사도 요한은 공동체에 남아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는 그들을 이겼다”고 말씀합니다. 네, 이것은 그 성도들이 그들에게 미혹되지 않고 공동체에 남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떠나고, 얼마나 남았을까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요한일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반이 떠나고, 반이 남았을 것이다...” 네, 1세기 당시 요한 교회 공동체의 역사와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것을 영적인 큰 승리로 말씀합니다. 거짓을 이기고 진리를 붙드는 것... 그것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영적인 승리이죠.
사도 요한은 이렇게 “너희가 그들을 이겼다”고 말씀하고, 이어서 그 이유도 말씀합니다.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이 말씀의 의미는 너희의 승리의 비결은 너희 안에 계신 그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와 같은 승리의 비결을 5절과 6절에서 계속 말씀합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의 말을 하고, 그리고 세상인 그 신자들도 그들의 말을 듣고 따라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고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남게 되었다”
네, 사도 요한의 이 말씀은 매우 신비한 내용입니다. 그들의 DNA는 세상이므로 세상의 말을 듣고 떠났지만, 우리의 DNA는 하나님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본질과 우리의 본질이 어떻게 다를 수 있게 되었는가...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신비가 있습니다.

앞서 사도 요한은 신자들에게 영을 분별하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영을 분별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알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에베소교회의 성도들도 자칭 사도라 하되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고, 그래서 주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최선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4절 이후 사도 요한은 그런 우리의 노력과 분별과 뭔가 다른 내용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런 우리의 분별과 승리의 배후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신비와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본질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죠.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듣고 아는 것은, 내가 똑똑하고 현명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분이 나를 자기 양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4~6절에서 말씀하는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는 당연히 하나님의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나는 옥토인가, 길가인가, 돌밭인가, 가시밭인가... 나는 어쩌다 옥토가 되어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믿고 열매를 맺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선택해주시고 자녀 삼아주시고 옥토로 만들어 주신 이유를 우리는 모릅니다. 내가 잘한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은혜를 늘 감사히 여기고, 열심히 하나님을 따라가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그분을 열심히 따라갈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가 별로 감사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그분을 열심히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랑과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같은 우리를 하나님은 값진 보석처럼 보시고, 나를 따라오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4~6절 말씀의 이 사실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기도제목을 가르쳐줍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모릅니다. 나의 본질과 DNA를 나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왜 이것을 좋아하고 왜 저것을 싫어하는지... 내가 왜 이것을 선택하고 저것을 선택하지 않는지... 내가 왜 이 길을 걸어가고 왜 저 길을 걸어가지 않는지... 우리는 우리의 성장과 많은 경험과 지식과 환경들을 통해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나를 가지게 됩니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떠나 사람들은 그들의 말이 그들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간 것입니다. 신적인 예수를 추구하는 그 가르침과 신앙이 어쩐지 그들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하려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사기꾼에 속는 사람이 이미 그런 말에 귀기울이는 마음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의 속사람을 위해 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도록,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일반 세상이 아니라 사탄이 지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 세상을 말하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고 세상 속에서 잘 살아야 하지만, 그와 같은 악한 영적인 세상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이 마지막 때에 비록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큰 구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양은 양이 되고 염소는 염소가 됩니다. 누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누구는 마귀의 자녀가 됩니다. 누구는 알곡이 되고 누구는 가라지가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나의 인생과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굳어져 갑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래서 공의롭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늘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선한 영을 창조하시고, 참과 진리를 좋아하게 하시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반면에 야비하고 추하고 악하고 거짓되고 불의한 것은 영적인 거부 반응이 생기도록...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늘 겸손히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한편으론 분별하면서 한편으론 들으면서, 한편으론 감사하면서 한편으론 기도하면서 우리는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끝까지 지키시고, 우리 인생의 모든 길과 영적인 길을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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