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마가복음의 기록 목적 (1)

믿음찬교회 0 183 2023.04.25 15:05
마가복음의 기록 목적 (1)
막 1:1
2023.04.21.

요한계시록 후에, 어떤 성경으로 금요기도회 말씀을 나눌까 여러모로 생각하다가 마가복음을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은혜를 받으면, 우리의 기도에 더 힘이 생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마가복음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최초의 복음서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당시 예수님에 대해 정리된 여러 구전들(수난 및 기적 이야기들, 가르침과 설교들, 사도의 증언들)과 말씀 모음집 등 이런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성령의 감동 아래, 어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전기 및 이야기 형식으로 복음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이전까지 복음서라는 것도 없고 복음서 장르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형식과 모습으로 마가복음을 만든 것은 마가복음 저자의 큰 공이고 하나님의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복음서들은 모두 이 마가복음의 형식을 따르게 됩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서도 가장 초기의 내용과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이 참 중요한 성경입니다.
기록된 시기는 아마도 유대 로마 전쟁이 발발한 AD 66~72년 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유대 로마 전쟁이 마가복음 기록에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이후 약 10년 정도 지나면, 보다 발전된 내용과 구조를 가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이후 또 약 10년 정도 지나면 마지막 복음서인, 매우 심오한 요한복음이 나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에 대한 기록은 네 복음서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복음서는 모두 네 복음서로 존재하게 되는데, 서로 차이도 있고 다름도 있지만 잘 어우러져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을 매우 풍부하고 깊이 있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복음서의 모습은 마치 4가지 빛을 내는 보석 같기도 하고, 4가지 실로 짠 옷감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네 개의 복음서를 가지게 된 것이 참으로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네 개의 복음서를 보면서, 각 복음서의 특별한 내용과 중복되는 내용을 잘 보아야 합니다. 특별한 내용은 특별한 내용대로 이해하고, 중복되는 내용은 중복되는 내용대로 이해하고, 그렇게 종합해서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한편, 네 복음서 외에도 여러 다양한 복음서가 있긴 하지만, 모두 네 복음서의 수준과 권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외경으로 분류됩니다. 간혹 그중에는 위경으로 분류되는 잘못된 문서들도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1:1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은 이렇게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 짧은 말씀에는 크게 2가지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말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둘째는, 그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무엇을 행하셨나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1:1 말씀은 예수님이 누구이시고, 그분이 어떤 일을 행하셨나 하는 내용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런데 바로 이것이 다름 아닌 마가복음의 기록목적입니다.
이렇게 마가복음은 1:1을 시작하면서 책의 기록목적을 먼저 말씀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이 어떤 성경인지 간단히 말하자면,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누구이신가를 말씀하고, 아울러 동시에 그분이 궁극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말씀하는 성경입니다.
한 권의 책이나 메시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말하는 목적을 먼저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이와 같은 마가복음의 기록 목적을 살펴보고 은혜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1:1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마가복음은 이렇게 예수님의 정체를 먼저 밝힙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나씩 진행하면서 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또한 그리스도이신지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가복음 안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그 정체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예수님과 동행했던 제자들도 그것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압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3:11),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5:7)
그리고 또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에 가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백부장이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15:39)
이렇게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정체를 마땅히 알아야 하는 제자들과 유대인들은 그분을 모르고, 오히려 귀신들과 이방인 백부장은 그분을 알고 바르게 고백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마가복음은 왜 이런 아이러니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걸까요? 네, 마가복음의 이와 같은 아이러니 안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가복음이 이런 아이러니를 통해 이 말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네, 그렇습니다. 이 질문은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신앙 현실을 돌아보면,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고 피상적이고 심지어 잘못되기까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잘 모르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마가복음의 도전적인 질문을 이해하고, 이 말씀을 읽어나가면서 예수님을 올바르게 발견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에 대하여, 먼저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는 그분은 인간이시고 역사 속의 인물이시지만, 신적인 분이고 신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본래 당시까지 하나님의 아들 혹은 신의 아들이란 말에는 그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문헌이나 그리스-로마 세계의 문화에서 그 말은, 하나님이나 신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과 신의 아들로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사님이나 성도들을 주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신의 아들이라믄 그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가 예수님 이후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여기에 신성의 의미가 들어가게 된 것이죠. 놀라운 예수님의 삶과 말씀들 그리고 놀라운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교회와 신자들은 일찍부터 예수님을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마가복음은 60년대 후반에 나왔다고 여겨지는데, 그보다 앞서 50년대에 나온 바울 서신이 이미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들을 감안하면 교회와 신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경배한 일은 이미 30~40년대에 확립된 역사적 사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0~40년대라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직후를 의미하고, 따라서 그 사건과 거의 시간적 간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확립된 것은 오랜 시간 후에 교회가 그렇게 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결정적으로 반박하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 같은 분도 기독교와 예수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분 중에 하나입니다. 그분의 그런 강의들이 youtube에 올라와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는 당시 유대 사회의 실패한 개혁가 중 한 사람인데, 1세기 후반 유대 랍비들이 자기 민족의 부흥을 도모하기 위해 종말론 같은 것을 가미하여 그를 신적인 예수로 되살린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예수는 역사적 예수와 다른 가짜이고,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 바로 지금의 기독교라고 말합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 같은 분이 그런 강연을 하니까, 안 그래도 기독교를 싫어하는 많은 분들이 그 강연을 보고 마침내 기독교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고 열렬한 반응과 댓글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강의나 책을 자주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그분의 그런 주장과 강의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왜 그런 검증되지 않은 돌아다니는 가설 같은 것을 받아들이고 또 그런 내용을 사람들에게 말하는지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과 주님으로 확립된 것은 아주 이른 시기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직후 그와 같은 예수 섬김과 경배가 발생했다는 것이 성경 말씀의 증거이자 정통 신학계의 정설입니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주에 계속 이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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