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
마 2:1~2,9~11, 눅 2:8~20
2022.12.25
기쁘고 복되고 아름다운 성탄절 날,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과 하시는 일과 기도하시는 제목에 아름답게 임하시길 빕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 있다면, 성탄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는 어릴 적에 성탄절이 다가오던 어느 날, 우리 집에서 보이던 교회 종탑 성탄 장식과 불빛을 보고 너무 좋은 나머지... 어떤 행동을 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했을까요? 네, 제가 방에서 혼자 앞구르기를 했습니다. 성탄절의 웬지 모를 의미와 분위기로 그렇게 들떴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성탄절과 관련한 아름다운 기억들이 많이 있으신 줄 믿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는 앞으로도 성탄의 기쁨과 좋은 추억이 많이 있으시길 빕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한 두 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태복음에, 다른 하나는 누가복음에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탄생을 설명하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뜻과 많은 의미와 메시지가 담긴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탄절이 되면 꼭 이 두 개의 이야기를 깊은 마음으로 읽고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지난 성탄절에 우리는 마태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살펴보았죠. 그래서 올해는 누가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살펴볼 시간입니다.
그런데 작년의 마태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아무래도 많이 잊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그대로 다시 살펴보고, 그런 다음 누가복음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두 이야기를 한 번에 같이 살펴보면, 예수님의 탄생을 더 잘 이해할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배경으로 동방박사와 헤롯왕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별이 등장합니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이야기 끝에 잠깐 등장하죠. 그래서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이와 같은 배경과 등장인물을 가지고 매우 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아름다운 별과 보배합이 나오는 동화 같은 모습도 있고, 헤롯왕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소동하는 어두운 현실 모습도 있고, 깜깜한 길을 별이 인도하는 초자연적인 신비한 모습도 있습니다. 아름답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이것이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입니다.
만약 현대 문학을 전공한 어떤 전문가 이와 같은 마태복음을 읽는다면, 혹평을 할 것 같습니다. 동화에다가 현실에다가 판타지까지... 이렇게 막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날의 특별한 내용을 우리 생각과 다르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왜 이럴까요? 왜 이렇게 아름답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할까요? 그것은 이 이야기에 그와 같은 의미가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마태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는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담긴 보배합... 상상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더 아름다운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별입니다. 별은 이 이야기의 전체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동방박사들이 그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다고 말씀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아마도 옛날 이스라엘의 왕궁 예언자와 같은, 그들 나라의 현인이나 사제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꿈도 해석하고 별도 연구하고 마술도 하는 그런 박사들입니다. 그들은 고대인들이 흔히 그랬듯이 앞날을 내다보고 길흉화복을 알고 점을 치기 위해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한 특별한 별을 발견하였는데, 그들은 그것이 특별한 왕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 왕을 만나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먼 길을 여행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 같습니다. 별이 등장하고 별이 인도하고 별이 상징하는 이야기... 별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며 보배합을 여는 모습도 참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그들은 오직 그분께 최고의 경배를 드리기 위해 그렇게 먼 길을 왔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요? 네, 그것은 그분이 오신 의미가 그렇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하시기 위해 이 낮고 천한 곳에 임하신 주님... 그것은 아름다움의 극치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어찌 오신 모습만 그러하겠습니까? 그 결과와 미래도 지금 우리 가운데 심히 아름답습니다. 소망 없는 이 어두운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시고, 그 빛으로 우리를 그분의 나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둘째, 마태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는 어둡습니다.
예수님 탄생 이야기가 아름답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예수님 탄생 이야기는 어둡기도 합니다. 마태는 예수님 탄생 즈음에 있었던 너무도 어두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어두운 현실이 무엇이었을까요? 네, 그것은 당시 권력과 권력자들의 악한 모습입니다.
우선, 정치권력자인 헤롯왕이 예수님의 탄생을 원치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에돔 사람인데 로마에 충성하여 당시 유대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늘 자신의 자리가 불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부인과 아들들과 장모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인물이기에 그는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박사들의 말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헤롯은 그 아기가 누구이고 어떤 인물이든, 그 싹을 잘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 그 별이 나타난 때를 묻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찾거든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꿈에 계시를 받은 박사들은 헤롯에게 알려주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그 후 헤롯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분노한 헤롯은 베들레헴으로 군사를 보내 2살 아래의 아기들을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헤롯왕만 악했을까요? 당시 유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악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악한 그들은 메시아인 그리스도가 탄생하실 장소를 알고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왜 안 갔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에도 관심이 없고, 자기 민족의 구원과 해방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헤롯과 마찬가지로, 오직 권력과 정치와 자신들의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자리와 힘을 계속 잘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메시아의 탄생은 그들에게 방해 요소이고 골칫거리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메시아 탄생이 비록 사실이어도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계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헤롯은 죽이려하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예수님은 이와 같은 어둡고 차가운 현실 가운데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가 왜 이렇게 어둡고 차가울까요? 그 이유는 그분의 생애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의 죄악과 어두운 역사를 뚫고 지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를 드러내고 죄악과 싸우고 거짓을 폭로하고 종교와 위선을 무너뜨리고... 그렇게 그분은 십자가로 나아가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예수님의 생애를 품은 예수님의 탄생은 어둡습니다.
셋째, 마태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는 초자연적입니다.
예수님의 출생과 함께 신비한 별이 나타나고, 그 별이 박사들을 인도하고, 또 그 별은 아기 있는 곳에 머물러섭니다. 또 박사들은 아기를 본 그날 밤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계시가 임합니다. 이런 모든 내용은 이 이야기가 초자연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현실만 믿지만, 보이는 현실이 다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전부로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초자연을 제3의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시각으로 오늘 본문을 읽어야 합니다.
마태는 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이렇게 초자연적으로 묘사하였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의 탄생은 우주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는 이런 초자연적인 모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고 태어나셨고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죽음과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아름답고 어둡고 신비한 이야기입니다. 그분의 이와 같은 탄생은 그분의 생애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아름답고 어둡고 초자연적인 예수님... 그분의 삶은 하나님의 뜻으로 아름답고 십자가로 어둡고 부활로 신비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와 같은 그분의 탄생과 생애의 모습은 그분의 모습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을 따르는 우리도 그 모습이 되고 그 길을 걸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믿는 자들의 삶과 신앙도 아름답고 어둡고 초자연적입니다. 그분을 믿기에 아름답죠. 그분을 믿기에 어둡습니다. 그분을 믿기에 초자연적입니다.
그래서 이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예수님을 위한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우리들을 위한 영원한 이야기도 됩니다.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를 살펴보았다면,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도 살펴보아야 하겠죠.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가 별과 동방박사와 예물과 헤롯왕으로 상징된다면,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천사와 목자와 마구간과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으로 상징됩니다.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와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서로 겹치는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베들레헴, 아기 예수, 마리아... 이런 정도만 겹치죠.
보통 교회에서 성탄절 연극을 하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막 섞입니다. 동방박사와 목자가 같이 나오고, 천사와 별이 같이 나오고, 그리고 동방박사가 마구간에서 예물을 드립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완전히 다릅니다. 마태복음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어둡고 초자연적인 이야기라면,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소박하고 초라하고 영광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아기 예수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모습은 그리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초라하고 눈물 나는 모습이죠. 어느 부모가 자기의 첫아기를 냄새나는 구유에 누이고 싶겠습니까? 아무리 가난하고 객지라도 그렇죠. 그때는 모두 다 가난하고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저라도 아기 예수님을 안아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불에 뉘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마구간과 구유 안의 아기 예수를 예쁜 장식과 모형으로 만들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냄새나고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초라한 곳으로 손님들이 왔습니다. 불쑥 찾아온 손님은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목자는 그때도 참 초라하고 힘든 직업이죠. 그들은 이름 없는 남루한 사람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마리아와 요셉이라면 그들의 방문과 축하가 감사하고 의미 있었을까요?
이렇게 누가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는 너무 초라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이야기가 놀라운 것은 이런 초라한 모습과 함께 하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갑자기 주의 사자와 주의 영광이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에게 하늘의 메시지와 수많은 천군 천사와 그들의 놀라운 찬송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상상을 해 봅니다. 그 천군 천사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천군 천사이기에 아무렇게 막 나타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진용을 갖추고 나타났을까? ...’ 대성당 안이나 판테온 안의 둥근 지붕처럼 하늘 가득히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천사의 메시지와 천사들의 찬양도 놀랍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것은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디를 돌아다녀도 들을 수 없는 하늘의 소리입니다.
그래서 이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마태복음 이야기만큼이나 정말 이상하고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너무 높고, 너무 낮고... 너무 영광스럽고 너무 초라한... 한 줄은 하늘을 말하고 한 줄은 땅을 말하는... 그런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말하는 걸까요? 네, 누가복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성탄절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화려한 성탄 불빛과 아름다운 장식들,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들, 사랑이 담긴 예쁜 선물들... 이런 것들이 성탄절의 모습일까요?
네, 진정한 성탄절의 모습은 마구간의 구유 안의 아기 예수님입니다. 거기엔 화려한 불빛이나 값진 물건이나 멋진 장식품이 없습니다. 오직 어두운 불빛 아래 구유 안에 귀하신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로 진정한 성탄의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면 만약 우리가 그렇게 거기에 계신 분을 찾아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요? 네, 목자처럼 나아가야 하죠. 우리의 모습 그대로 오직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목걸이도 풀고 시계도 풀고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지위에 있고 어떤 힘이 있고 무엇을 했고... 그런 것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직 진실한 마음 하나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예수님이 거기에 그렇게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낮고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신 그분께 우리도 낮고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 그것이 누가복음이 말씀하는 성탄절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의 크리스마스는 너무 화려합니다. 화려한 불빛과 많은 장식과 신나는 음악과 떠들썩한 행사로 우리는 매년 크리스마스를 보냅니다. 저도 그런 성탄절을 제 나이만큼이나 보내왔습니다. 교회에서 이브 모임을 하고는 거리를 쏘다니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진정한 성탄절이 무엇이고, 무엇이 진정한 성탄절의 모습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오늘 이 누가복음 말씀에서 진정한 성탄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성탄절은 어두운 불빛 아래 구유 안에 계신 그분입니다. 또 거기에 계신 분께 나아가는 우리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복된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와 같은 성탄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렇게 주님께 나아가시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만지실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안에, 여러분은 주님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고 돌아간 목자들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며 여러분의 삶으로 새롭게 돌아가시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아름답고 어두운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초라하고 영광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그분의 이야기는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어두운 세상에서 아름답게 만들어가시길 기도합니다. 또 낮고 천한 우리를 영광스러운 그분의 자녀로 만들어가시길 기도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성탄절에 그런 은혜와 복이 우리 교회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