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최후의 심판 (1)

믿음찬교회 0 126 2022.11.22 13:45
최후의 심판 (1)
계 19:17~20:6
2022.11.18.

오늘 본문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최후의 심판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 전쟁의 결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사탄이 사로잡힙니다. 그들은 모두 유황불 붙는 불 못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악의 세력의 궤멸과 함께 하늘에서는 최후의 심판 법정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모든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다 심판을 받고, 불 못에 던져집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악과 죄와 불의가 마침내 불의 심판으로 마무리되는 이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읽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과 관련된 오랜 난제는 이와 같은 최후의 심판 가운데 들어있는 소위 천년왕국입니다. 최후의 심판 본문의 가운데인 20:4~6에 천년왕국에 대한 말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천년왕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는 요한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천년왕국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체로 과거에는 천년왕국을 역사적 혹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로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여, 최후의 전쟁 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고 그 후에 천년왕국이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과거엔 그것이 주된 견해였습니다.
과거에 주로 그렇게 이해한 가장 큰 이유는 요한계시록이 시간 순서대로 쓰였다고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교회가 천년왕국을 실체적 사실로 말하는 것이 신자들의 믿음과 마음을 끄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천년왕국이 실제로 역사 속에 실현되고, 우리 믿는 자들이 거기에 참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천년왕국을 그렇게 현실적으로 많이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요한계시록에 대한 성경연구가 체계적으로 진전되면서 이 해석은 점점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전문 연구는 요한계시록이 기본적으로 어떤 책인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이해를 높였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전천년주의 해석이 스스로 약해지게 된 중요한 이유는 왜 천년왕국이 구원과 심판에 있어 실체적 사실로 필요한지, 또 왜 하나님의 심판이 천년왕국을 중간에 두고 두 번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잘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결정적인 요인은 천년왕국에 대한 다른 성경말씀의 뒷받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해석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천년왕국에 대한 최근의 주된 견해는 소위 무천년주의 혹은 시작된 천년주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천년왕국을 영적인 의미로 이해하여, 그것을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교회 시대로 이해하는 것이죠. 물론 이 해석에도 몇 가지 약점은 있고, 그래서 해명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천년 동안 사탄이 결박되고 무저갱에 인봉되었다고 하는데,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 과연 사탄이 그런 상태에 있는가 하는 점이죠.
여기에 대해 무천년주의는 사탄의 결박과 인봉을 문자적인 완전한 의미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 보고 그래서 그 의미를 교회 시대의 복음으로 사탄이 만국을 본격적으로 미혹하지 못하는 의미로 설명합니다.
또 무천년주의는 4~6절에 나오는 의인과 악인의 두 부활에 대해 하나는 영적인 부활로 다른 하나는 육체적 부활로 구분하는데, 전천년주의는 이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즉, 같은 문맥에서 하나의 단어의 의미를 그렇게 이중으로 구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점입니다. 전천년주의는 그 두 부활을 모두 육체적 부활로 봅니다.
이에 대해 무천년주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경이 동일한 문맥에서 부활을 말하면서, 하나를 영적인 부활로 다른 하나를 육체적 부활로 말하는 예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요한복음(5:24~29)과 로마서(6:4~13) 말씀이 그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영적인 부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육체적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육체적 부활)로 나오리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영적인 부활)한 자도 되리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육체적 부활)을 믿노니...”
그러므로 무천년주의는 이와 같은 예를 통해 동일한 문맥 안에서도 한 단어의 이중 의미는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이런 설명이 전천년주의 입장에서는 매우 미흡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전천년주의 해석의 약점과 난점보다는 무천년주의 해석의 약점과 난점이 상대적으로 작고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현재 무천년주의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무천년주의의 몇 가지 약점에 대해 설명드렸는데, 이제 무천년주의가 올바르다는 여러 이유 중 하나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구조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구조가 매우 뛰어나고, 이중 삼중의 구조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앞뒤로 넓게 글의 구조를 분석해보면, 계17장부터 22장5절까지 다음과 같은 교차대구 구조가 나타납니다.
    A – 바벨론 성의 몰락 (17:1~18:24)
      B – 바벨론 몰락에 대한 하늘의 음성 (19:1~10)
          C –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19:11~16)
            D – 최후의 전쟁과 짐승에 대한 심판 (19:17~21)
                E – 사탄이 천 년 동안 갇힘 (20:1~3)
                E′ - 성도들이 천 년 동안 왕 노릇 (20:4~6)
            D′ - 곡과 마곡의 전쟁과 사탄에 대한 심판 (20:7~10)
          C′ - 하나님의 심판 (20:11~15)
      B′ - 새 예루살렘에 대한 하늘의 음성 (21:1~8)
    A′ - 새 예루살렘의 영광 (21:9~22:5)
이상의 세밀한 구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로 이 내용이 단순히 시간 순서로 쓰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 내용은 최후의 전쟁과 하나님의 심판이 시간 순서로 두 번씩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중적으로 강조하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이와 같은 말씀은 상징적인 천년을 중심으로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진행하는 큰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소위 천년왕국은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로 진행하는 흐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이것은 그 천년왕국을 교회 시대로 보는 무천년주의 해석과 잘 들어맞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이렇게 본다면,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교회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천년왕국은 교회시대를 의미하고,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를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 계획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약의 모든 성경이 잘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은 본문 구조를 고려하면 천년왕국에 대한 무천년주의 해석이 올바르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상징적인 천년 동안 영적인 부활과 영적인 왕 노릇을 경험하며, 동시에 사탄의 패배와 교회의 승리를 경험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상과 같은 본문 구조를 이해하면, 우리는 왜 최후의 전쟁과 사탄에 대한 심판이 두 번 진술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미 최후의 전쟁을 승리하고 세상을 심판하셨는데 천년왕국 후 곡과 마곡의 백성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요? 또 왜 짐승과 사탄은 한 번에 심판받지 않고 두 번 나누어 심판받을까요? 전천년주의에서는 이 내용들이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들이 두 번 기록된 것은 그 일이 두 번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일을 이중적으로 말씀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점에서 20:10 말씀을 새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그런데 원어엔 여기에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다’는 말이 없습니다. 원어는 이렇습니다. “거기에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성경을 번역하는 분들이 그 생략된 동사를 ‘있다’로 보고 그렇게 번역해서 넣은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 생략을 할 때에는 앞에 나온 동사를 생략하지, 앞에 나오지 않은 동사를 생략하는 법은 잘 없습니다. 그래서 생략된 동사는 ‘있다’가 아닌, ‘던져지다’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고 거기에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던져지니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탄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동시에 함께 던져진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 지금까지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내용을 설명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전천년주의와 무천년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무천년주의가 왜 더 지지를 받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본문의 구조에 대해서, 그리고 최후의 전쟁과 최후의 심판이 왜 두 번씩 기록되었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오늘 본문을 바탕으로 어떤 믿음의 교훈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선 다음 주에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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