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천사의 하나님의 심판 (1)
계 14:6~20
2022.07.01.
우리는 지금 요한계시록의 가장 중심부를 지나고 있습니다.
바로 계시록 12~14장이죠. 여기에는 사탄과 짐승의 맹렬한 역사와 거기에 맞서는 신자들의 치열한 싸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싸움이 어떻게 마무리 될까요? 오늘 본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직 최후의 심판 즉 사탄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음녀 바벨론의 멸망은 나오지 않지만, 그 다가올 최후의 심판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17장부터 이루어지는 최후의 심판을 미리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모두 일곱 천사에 의해 예고되고 있습니다. 일곱 천사가 동원되었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습니다. 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성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은 공중에 날아가는 한 천사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천사는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영원한 복음은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우리가 아는 복음과 다른 복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가진 영원성과 불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역사 속에 나타난 인간의 많은 이론이나 가르침 중 하나가 아닙니다. 그것은 창세 전에 예비 된 것으로 인간과 만물을 구원하고 우주를 마무리하는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영원한 복음을 누구에게 전하는가 하면,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4중적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땅의 백성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왜 천사는 그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언뜻 보기에 이것은 최후의 심판을 앞두고 그들에게 복음의 기회와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한 강도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이 말씀을 그런 의미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땅에 거주하는 자들’이란 표현이 걸립니다. 이것은 앞서 나온 바 있는, ‘땅에 사는 자들’이란 표현보다 더 강한 표현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세상과 땅의 가치 체계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완전히 정착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7절의 말씀을 봐도,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다고 말씀하기 때문에 이것을 회개의 기회로 보기 어렵습니다. 회개는 심판의 시간이 이르기 전에 이루어져야 하죠.
그러므로 이 첫 번째 천사의 모습과 메시지는 한 마디로 심판의 선포입니다.
그래서 그가 가진 영원한 복음이란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 심판의 복음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근본적으로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이기도 하고 심판이기도 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그 나라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지만,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믿지 않으면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심판받습니다.
그래서 이 천사는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로서 지금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분에게 경배하라는 메시지도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에 회개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그분을 이제 인정하라는 선포의 의미입니다.
두 번째 천사가 등장합니다. 이 천사는 바벨론의 패망을 선포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바벨론의 죄악은 모든 나라에 그의 음행의 정욕의 포도주를 먹인 죄악입니다.
이 부분의 현재 번역은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이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서 ‘진노’는 ‘정욕’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본래 ‘뒤모스’라는 이 단어는 마음의 어떤 치열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진노’로 번역되기도 하고 ‘정욕’이나 ‘열정’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정욕’이 더 어울리고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성경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직역하면 ‘음행의 정욕의 포도주’인데, 이것을 좀 더 풀어 번역하면 ‘음행을 위한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포도주’입니다. 바벨론은 이런 포도주를 모든 이웃 나라에 먹이던 주도적 국가였습니다.
다시 말해 바벨론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우상숭배와 세상 가치관과 세상 문화를 모든 나라에 전파하는 중심 국가였습니다. 아시다시피, 1세기의 그 음녀 바벨론은 로마제국이었죠. 이 두 번째 천사는 그런 음녀 같은 바벨론이 무너질 것을 지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바벨론은 어디일까요? 미국일까요? 예, 1세기의 로마제국에 가장 가까운 오늘날의 국가는 미국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숭배와 세상문화를 국가 주도적으로 한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 중에서도 그런 일을 국가 차원에서 하는 나라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음녀 바벨론은 아직 없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 성경이 말씀하는 음녀 바벨론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자본주의와 물질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질과 자본은 세상의 우상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국가와 사람들 위에 우상처럼 군림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물질주의는 오늘날 가장 반하나님적이고 반복음적이고 반인간적인 사상적 제도적 실체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군림하며, 그의 음행의 포도주를 사람들에게 먹여 취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세상은 철저히 돈과 물질과 자본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고, 그 권세와 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돈과 물질과 자본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추구와 갈망과 각종 제도가 바로 오늘날의 음녀 바벨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돈과 물질과 자본에 대해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와 신자들이 그것을 주의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것과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과거와 달리 경제생활이 고도로 발달하여, 부동산 주식 펀드 채권 외환 코인 등 많은 곳에 투자를 하고, 또 어떤 분들은 본인의 본업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며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어떤 면에서 돈을 쫓아 매일 매일 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현대적인 삶을 살면, 음녀 바벨론의 지배를 받기 쉽습니다.
이번 주에도 한 가족이 경제적 이유로 생애를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코인 투자 실패로 국내 유수 대기업에 다니는 젊은이도 스스로 생애를 마감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제일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돈과 물질과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돈과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교회 살림에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교회 안에서 돈이 강조되거나 돈 문제에 민감하거나 다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돈이 넉넉하기보다는 돈이 조금 적은 것도 좋습니다. 목회자도 돈을 조금 적게 받고 적게 써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신자들에게 부담을 덜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런 가르침과 실천을 지속하면, 신자들도 평소 돈과 물질에 매이지 않고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돈과 물질과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많은 교회는 물질과 축복을 강조하고 많은 헌금을 강조하고 그렇게 돈과 매우 가까운 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부터 그렇죠. 그래서 교회가 평안하지 못하고 크고 작은 많은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세 번째 천사가 등장합니다. 이 천사는 짐승의 표를 경고합니다.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이 짐승의 표는 소위 최후 종말의 환란 날에 발행되는 어떤 물리적인 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전 종말의 기간 동안 사람들이 받게 되는 짐승의 모습과 성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을 선택하고, 선이 아니라 악을 선택하고, 정의가 아니라 불의를 선택하고,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선택하고, 진실이 아니라 거짓을 선택하고, 사람이 아니라 돈을 선택하고, 깨끗함이 아니라 더러움을 선택할 때 그 사람의 이마와 손에는 보이지 않는 짐승의 표를 받게 됩니다. 그런 생활과 삶이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생활과 삶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해도, 우리 생활과 삶의 모습과 본질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우상숭배자이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날에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됩니다. 그것은 영원한 고난을 의미합니다.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이것은 지옥에 대한 상징적인 말씀이죠. 그 지옥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지옥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과 의견이 있는데, 이것은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넷째 천사 이후 내용은 다음 주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