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세번째 종말 비유 (달란트 비유)

믿음찬교회 0 275 2022.06.21 12:17
세 번째 종말 비유(달란트 비유)
마 25:14~30
2022.06.19.

그날을 바라보며 이 마지막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예수님은 3가지 비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라’입니다.
종말에는 많은 미혹하는 자들이 출현하여 시대를 불안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특별한 일을 하고 특별한 헌신을 해야 한다고 미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기 일과 자기 삶에 힘쓰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기름을 준비하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기름’입니다. 기름의 정체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선한 삶입니다. 열매이고 실천이고 행위입니다. 입으로만 예수 믿는 사람, 생각으로만 예수 믿는 사람, 교회만 출석하는 사람... 기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름의 의미를 잘 알아서... 우리의 믿음이 삶이 되고 열매가 되고 실천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 비유는 예수님의 세 번째 비유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지난 비유에서 기름이 중요했으니, 이번 비유에서는 달란트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되실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선 달란트는 무엇인가? ... 네, 달란트를 대개 재능으로 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달란트를 영어 단어 talent로 번역해서 그렇게 이해하는 것인데, 그러나 원래 헬라어 단어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달란트는 그저 돈의 단위이고 무게의 단위일 뿐입니다. 아주 큰 돈이고 아주 무거운 무게이죠.
그래서 오늘 비유에서 달란트의 의미는 재능이라는 단순한 작은 의미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모든 것을 의미하는 크고 폭넓은 의미입니다. 나의 재능, 나의 능력, 나의 인생과 삶, 나의 시간, 나의 돈과 직업과 사업...
우리는 처음에 모두 빈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물론 나도 열심히 살았지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셨고,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나의 달란트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달란트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달란트가 아닙니다. 이 비유는 달란트 자체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달란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이 비유는 무엇을 말하는가?

구조적으로 볼 때 이 비유는 첫 번째 비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세 비유는 교차대구법으로 쓰였습니다. 두 번째 열 처녀 비유를 가운데 두고 첫 번째 충성된 종 비유와 세 번째 달란트 비유는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둘 다 종이 나오고... 종으로서 우리의 모습을 중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번째 비유는 첫 번째 비유의 반복이자 확대입니다. 첫 번째 비유의 메시지를 반복함과 동시에 어떤 새로운 내용을 추가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비유는 자기 일과 삶에 충실한 종을 말하였죠. 이제 세 번째 비유는 자기 일과 삶에 충실한 종을 말하면서, 나아가 주인이 준 달란트를 남기는 새로운 내용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세 번째 비유의 메시지는 달란트 자체가 아닙니다. 이 세 번째 비유의 메시지는 달란트를 남기는 것입니다. “너는 남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 너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을 가지고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는 그렇게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야 한다”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인생은 모두 장사꾼입니다. 다 무엇인가를 팔면서 살아갑니다. 장사꾼은 물건을 팔고, 선생은 지식을 팔고, 예술가는 예술을 팔고, 운동선수는 운동하는 모습을 팔고, 공무원은 행정서비스를 팔고, 목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팝니다. 우리는 저마다 무엇인가를 팔고 돈을 벌고 이익을 남깁니다.
장사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원가 개념입니다. 원가가 얼마고 그래서 얼마가 남았느냐... 그런 계산을 잘해야 합니다. 오늘 비유에서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긴 이 주인은 그런 계산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이 주인이 그렇다는 것은 곧 이 주인이 상징하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계산이 분명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마냥 은혜롭고 마음이 좋기만 한 그런 분이 아닙니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주었는데 너는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 반드시 그렇게 물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을 살아갈 때 이런 영적인 계산법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습니다. 한 세상 자기 뜻대로 잘 살았으면, 이만하면 잘 산 것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합니다.

부산 서구에 가면 감천문화마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제가 그 동네 밑에 살았기 때문에 그곳을 잘 압니다. 우리 동네도 가난했는데, 거기는 더 위에 있는 동네로 더 가난하고 볼품없는 동네였습니다. 그런 곳이 감천문화마을로 예쁘게 재탄생했습니다.
부산의 어느 작가분이 그 마을에 사는 몇 분 어르신들의 자기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내었습니다. 아주 짧은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책으로 만들었는데, 거기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제목은 “그만하면 잘 살았어”
  나는 운전을 65년 했어.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졸업장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래서 이것 저것 안 해본 장사 없이 다 해봤어. 공장도 다녔어. 다 잘 안 맞았어.
  그러다 운전을 했는데 오래 했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할 때도 있었고, 회사 통근 버스도 운전했어. 회사 통근 버스를 운전할 때가 재미있었어. 회사 직원들이 고생한다고 마실 거며 먹을 것을 챙겨주고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네주면 힘이 났지. 수입도 고정적이어서 마음도 편안했어.
  나는 육십 넘어서까지 일을 했어. 칠십 들어서면서부터 일을 그만 두었는데 몸은 편하고 좋아. 마음이야 이팔청춘이라 얼마든지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몸이 따라 주지를 않아.
  나는 이제 걱정이 없어. 바라는 것도 없어. 운전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볼 것 다 보고, 가고 싶은데 다 가봤고, 해보고 싶은 것도 없어.
  애들도 제 밥벌이 잘 하고 있고, 이제 우리 집사람과 내 몸만 건강하면 돼.
  그만하면 잘 살았어.

네, 이 글은 본인의 인생을 돌아보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글입니다. 본인의 애썼던 소박한 삶을 돌아보며 ‘잘 살았다’라고 회고하는 이 글을 제가 달리 평가하거나 말할 부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말하고 싶은 한 가지 내용은 있습니다. 이 글은 잔잔하고 감동을 주는 좋은 글이지만, 적어도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중에 우리 삶을 돌아볼 때, “그만하면 잘 살았어...” 라는 말로 끝내면 안 됩니다. 우리에겐 우리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저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면서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이렇게 이것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고백은 이런 내용이 꼭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 자신의 마지막 고백을 남긴 인물은 많지만, 신약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여기서 우리는 사도바울의 마지막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곧 주님을 만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자기에게 친히 주신 사명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자기 인생을 계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회고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너무 훌륭한 삶을 살았죠. 그래서 그는 의의 면류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입니다. 단순한 복음의 면류관이나 전도의 면류관이 아니라, 의의 면류관입니다. 자신의 사명과 삶 전체가 어우러져서... 하나님께서 그 전체를 보시고 내려주시는 면류관입니다.
바울은 단순히 복음 전하는 자로 산 것이 아니라, 복음과 함께 산 사람이고 복음과 함께 의로운 삶의 열매를 맺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면류관의 이름이 의의 면류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면류관이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우리 모두에게 예비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 말고 마지막 말씀을 남긴 분이 또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무엇일까요? 십자가 위에서의 가상칠언 가운데에서도 맨 마지막 말씀... 네, 그것은 바로 “다 이루었다”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모든 사명과 일들... 예수님은 그것을 말씀하시며 자신이 그 달란트를 받아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이 달란트 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나는 내 인생과 삶과 능력과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그것을 가지고 내 삶을 살아내야 하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가지고 가야 한다는 의식... 이와 같은 달란트 의식이 분명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의 삶이고 믿음의 길입니다.

몽실언니와 강아지 똥 작가로 유명한 권정생 선생이란 분이 계십니다. 한국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시죠. 37년생으로 2007년 돌아가셨는데... 1937년에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도쿄 빈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시고 아버지는 거리 청소부이셨습니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어둡고 음산했다...’ 그분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주어온 동화책을 읽고, 그런 가운데 누나들이 친구들과 교회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평생 앓게 된 결핵을 그때 걸렸죠. 60년대 중반 20대 후반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고, 그때부터 이분은 병을 안고 쭉 혼자 외롭게 살았습니다.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빌뱅이 언덕 아래 흙집... 본래 거기는 상여를 보관하는 상여집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교회 문간방에 살던 그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거기 작은 흙집을 지어주었죠. 그래서 권정생 선생은 거기에서 평생 책을 읽고 동화를 쓰고 살았습니다.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그분은 그렇게 아름다운 동화와 글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분은 단순한 동화 작가를 넘어, 사상가이자 평화주의자로 살고, 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교회의 잘못을 많이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교회 사람들이 그 집을 고쳐주겠다고 해도, “내년에 내가 장가가면 고쳐주소” 그렇게 말하고 계속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평생 앓던 병으로 죽을 때,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면 꽤 많은 돈을 기탁하였습니다.
저는 권정생 선생의 삶과 글을 보면서... 그분의 삶은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남긴 훌륭한 삶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은 어쩌면 하나님을 평생 불평하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삶은 그래도 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건강한 몸 하나도 그분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어려움과 슬픔과 작은 집과 풀과 벌레와 자연을 보면서... 달란트를 남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얼마 전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가 끝났습니다. 그 드라마의 마지막 회는 동석과 그의 어머니 옥동의 이야기였습니다. 동석은 평생 미워했던 어머니와 화해하고 이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줍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올테니,  된장찌개를 끓여달라고 말합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 집을 방문한 동석은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를 발견합니다. 어머니는 그 된장찌개를 동석에게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동석에게 남긴 그 된장찌개... 그것은 평생 멀어졌던 아들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어머니의 큰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동석은 이제 힘들고 쓸쓸했던 삶을 끝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같을 수 없고 사도바울 같을 수 없고, 권정생 선생 같을 순 없어도... 이와 같은 된장찌개 하나 정도는 남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을 남기고, 은혜를 남기고, 기도를 남기고, 삶을 남기고... 우리가 가정에서 교회에서 또 내 일과 삶에서 그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무엇인가를 남길 때, 하나님은 그것을 달란트로 보십니다. 
우리가 무슨 거창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내 삶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좋은 부모가 되고 고마운 사람이 되고 유익한 사람이 되고 우리는 그렇게 달란트를 남기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한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삶을 삽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남기고 준다는 의식이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돈과 자원을 모두 자기를 위하여 다 사용하고 맙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아무것도 하나님께 내어놓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날에 심판대에서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내가 준 것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하여 산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선생된 사람이라도 이 달란트 의식이 없는 사람은 학생을 위하여 무언가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선생 노릇하고 선생 자리에 있는 것만을 위해 산 사람일 것입니다.
비록 목사라도 이 달란트 의식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신자들을 위해 무언가를 남기거나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목사 자리에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저는 부족하지만, 여러분들에게 무언가를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거 뭐 약하게 생기고 말도 딱 부러지게 못하는 분이지만, 그래도 뭔가 열심히 성경을 설명하고 말하는 분이더라...” 그렇게만 되어도 저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작은 하나라도 여러분에게 남겨진다면, 하나님 앞에 가서 드릴 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 뭐하다 왔느냐?” 하시면, 저는 “다른 재주는 없고 그저 열심히 성경 보고 설명하고 들을만한 설교를 좀 하려고 하고... 그렇게 노력하다 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물으실 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잘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달란트 비유는 달란트를 남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달란트를 찾아서 꼭 남기시길 바랍니다.
이 어려운 마지막 때... 어둡고 혼란스럽고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이 때... 여러분은 달란트를 남기는 귀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큰 복을 내려주십니다.

아무쪼록 우리 들에핀믿음찬교회 성도님들은 달란트 의식을 가지고 달란트를 남기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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