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 (2022.02.11)
요한계시록 34
요한계시록의 숫자 상징과 144,000
계 7:4~8
우리는 지난번에 하나님의 인이 무엇이고 그것이 마지막 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4,000과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어떤 관계인지... 이런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제 요한계시록 안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144,000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석이 부족하고 이해가 어둡던 과거에, 이 144,000은 요한계시록 해석에 많은 논란이 된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논란의 출발은 이 숫자를 실제 수로 해석하고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요한계시록을 바탕으로 일어난 많은 이단은 이 수를 실제 수로 말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아무리 예수 잘 믿어도 소용없다... 이 144,000에 들어가야 결국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144,000의 비밀이다” 이렇게 말하고 가르치고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틀린 해석이고 틀린 주장이었지만, 영적으로 불안감을 주었고 또 그들의 강한 주장 속에 악한 영이 역사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대표적인 이단이 바로 신00입니다. 그들은 144,000에 들어야 구원받고 영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00 교주를 보혜사 성령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만이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한다고 말하면서, 144,000에 들어가야 구원받는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면 144,000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신00에서 실제로 활동했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이렇게 교육했다고 합니다.
144,000에 들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 모임에 입교를 해야 하고, 두 번째로 그들 교회에 등록을 하고, 그런 후 마지막으로 그들 총회에 등록이 되어야 비로소 144,000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선 출석이나 전도 활동은 물론이고 십일조, 감사헌금, 구역헌금 등 각종 헌금을 잘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말했던 그 사람은 자신은 청년이고 돈이 없고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구역장이 자기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헌금생활이 부족해서 총회등록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시달리다가 나중에 신00가 잘못된 줄 깨닫고 다행히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 이단은 144,000을 실제 수로 말하면서 정통 교회들이 이 수를 상징수로 보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그들의 교세가 14만명을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은 이 내용을 조금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144,000과 흰 옷 입은 무리를 별개로 구분합니다. 그래서 144,000은 새 나라의 제사장들과 사명자들이고 흰 옷 입은 무리는 새 나라의 백성들이라고 하면서 이 전체가 구원받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일단은 144,000에 들지 않아도 자신들 모임에 참여하면 구원은 받을 수 있다고 안심시키죠. 그러나 그러면서도 여전히 144,000이라는 새 나라의 영광스런 제사장들이 되어야 한다고 헌신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00는 지금도 교세를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주 뉴스를 보니까, 신00가 지금 이번 대선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여론조사에 관여하고, 후보 선출에 표를 몰아주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여론을 만들고, 특히 20~30대 젊은층 지지도에 이들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신00는 단순한 이단 세력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와 정계에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큰 세력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와 믿는 자들의 각별한 주의와 기도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신00를 비롯한 물의를 빚는 대다수 이단은 144,000을 어떻게든 실제수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들이 끌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존 정통교회들은 당연히 이 수를 상징수로 말합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상징적인 언어와 이미지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이해의 출발이자 기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숫자 역시 대부분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숫자를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해석하는 일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일입니다. 고대의 점술과 천문학과 철학이 수를 그렇게 사용했습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수를 만물의 근원으로 이해했고,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수비학은 피타고라스학파 외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런 시대에 기록된 성경도 숫자를 단순한 수가 아닌 의미를 가진 수로 사용하고 있고... 이것은 성경이해와 해석의 기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창세기를 비롯한 구약 성경 전체가 그렇고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7일간 하셨고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피를 7번 뿌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성에서 7일 동안 돌았고 마지막 7일 째에는 7바퀴를 돌았습니다. 발람도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7제단을 쌓죠. 이런 내용은 끝이 없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수에는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성경의 숫자는 7외에도 3과 4와 12가 있습니다. 3은 하나님의 완전수입니다. 4는 땅과 세상과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완전수입니다. 그리고 7은 3과 4로 만들어진 수로 어떤 행동이나 행위의 완전수입니다. 마지막으로 12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완전수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주석하는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요한계시록의 숫자들 안에 이러한 상징적 비유적 의미가 풍부하게 담겨있다고 봅니다. 요한계시록의 숫자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많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학자는 리처드 보컴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에 따르면 요한계시록에는 숫자 상징이 아주 많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4와 7의 패턴이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4는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땅과 세상 전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나옵니다. 7:1에서 천사들은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사방에 부는 바람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심판과 재앙은 4+3의 패턴 즉 앞의 4심판과 뒤의 3심판으로 나누어지는데, 앞의 4심판은 모두 땅에 내리는 심판과 재앙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심판과 재앙도 10장의 일곱 우레를 포함한다면 모두 4개의 시리즈가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심판은 7×4가 되어 이 의미는 온 세상에 미치는 완전한 심판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물론 이것은 일곱 우레를 제외하고 7×3으로 해도 완전한 심판의 의미가 되긴 합니다.) 한편 이러한 완전한 심판의 의미는 레위기로부터 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레위기 26:18~28에는 7중(7배) 심판의 경고가 4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이밖에 땅의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라는 4중 문구도 요한계시록 안에서 모두 7번 나옵니다. 또 18장에 바벨론이 수입하는 물건 목록이 나오는데, 그것이 모두 28개(7×4)인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적용되는 칭호도 대부분 7번 나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보좌에 앉으신 이’, ‘알파와 오메가’가 7번 등장합니다. 한편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는 4번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세상 만물과 땅의 피조물을 다스리는 문맥에서 사용되었기에 4번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도 7번 등장하고, ‘예수’는 14번, ‘어린양’은 28번이 등장합니다. ‘어린양과 하나님’은 7번 등장합니다.
그러나 사탄과 마귀와 용과 짐승을 말할 때에는 이러한 숫자 패턴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사탄’은 8번, ‘마귀’는 5번, ‘용’은 12번, ‘짐승’은 30번이 넘게 나옵니다.
미완성의 수와 사탄의 수로 알려진 6은 짐승의 수 666으로 나오고, 바벨론이 6번(개역개정에는 18:14,15의 you를 바벨론으로 표시하여 모두 8번이 나옴) 나오고, 음녀 바벨론을 가리키는 여자라는 단어가 6번 나오고, 여섯째 인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6개의 집단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한편, 요한계시록 안에서 마지막 부분에 이를수록 뚜렷이 나타나는 특별한 숫자가 있는데, 그것은 12입니다. 이 12는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을 가리키는 완전수이죠. 이 숫자는 21장과 22장의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12번 등장합니다. 이 짧은 본문에서 12가 이렇게 12번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이상의 내용이 요한계시록의 숫자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내용을 볼 때, 요한계시록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와 글의 구조만이 아니라 이렇게 숫자에 있어서까지 놀라운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내용을 고려한다면,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숫자는 상징적인 깊은 의미로 쓰였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같은 내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144,000을 실제 수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144,000에 대해, 이것은 하나님의 인을 받은 참된 성도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완전수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이 계산은 숫자에 대한 성경 및 유대 전통을 고려할 때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완전수 12의 제곱에 광대함을 의미하는 1,000을 곱한 수(12x12x1,000), 혹은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수 12에 1,000을 곱하고 여기에 12지파의 12를 곱한 수(12x1,000x12)입니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주에 나머지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