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어린 양처럼
막 14:12
2022.04.15.
방금 읽은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마가는 아주 의미심장한 단어 하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네, 바로 ‘유월절 양’이란 단어입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출애굽의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마지막 재앙을 내리실 때,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대로 지키는 구원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구원을 받기 위해선 어린 양의 죽음이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에 뿌렸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그 출애굽 구원 사건을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이제 예수님께서 그 출애굽 구원 사건의 유월절 양이 되실 것이라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이시고, 우리는 그분을 통해 구원을 받고 새로운 출애굽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얼마나 염원했을까요? 그들은 학대받는 노예 민족으로서 400년간 신음했습니다. 아무런 미래가 없고 그들의 자녀들도 계속 노예로 살 것입니다. 그것만큼 슬픈 일이 없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와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놀라운 역사로 그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들은 자유와 해방을 맞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백성도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런 크신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크신 은혜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죄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죄와 죽음과 세상과 사단의 노예였습니다. 노예일 뿐 아니라 우리는 세상에서 방황하는, 집이 없는 영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과 피로 구원해주시고 영원한 집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결코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오래전에 몽골에 단기선교를 간 적이 있습니다. 차를 타고 몽골의 여러 작은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몽골은 눈이 시원하고 공기가 너무 맑고 햇빛도 너무 깨끗한 곳이었습니다. 오후의 햇살이 아침 햇살 같았습니다.
그때 그 마을에서 우리는 저녁 식사로 양을 한 마리 잡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옆에서 양 잡는 것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풀을 뜯고 있는 양 무리에서 한 마리를 잡아서 한쪽으로 데려가서 뒤집어 안고 그렇게 양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양이 별로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발버둥도 별로 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낮은 울음소리를 짧게 내고 죽었습니다. 큰 양도 그렇다면, 작은 어린 양은 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후로 가끔 양이 죽는 그 모습이 생각나곤 합니다. 특히 이번 주 같은 고난주간이 돌아오면 그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돌아가셨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돌아가신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모르거나 잊어버리는 사람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매년 돌아오는 고난주간마다 특별히 그 은혜를 묵상하고 가슴에 새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그 모습도 묵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린 양처럼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을 기꺼이 참으시는 모습, 아무도 그분을 몰라봐도 개의치 않으시는 모습... 예수님은 그렇게 고난과 죽음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살면서 분노하고 힘들어하고 억울해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의 작은 이익이나 자존심이 해를 입으면, 우리는 화부터 냅니다. 우리는 권리엔 민감하고 희생엔 둔감합니다. 희생은 어리석고, 양보나 손해는 잘못된 것이라 배우고 있습니다. 작은 교통사고에 몸에 이상이 없어도 며칠씩 병원에 입원하고 보상을 받으려 합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화를 내고 피해를 보상하라고 합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삶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님의 희생과 고난을 생각하는 이 시간... 우리 예수 믿는 분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양보할 수 있으면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으면 희생하고, 용서해줄 수 있으면 용서해주고, 누가 몰라줘도 상관없고 ... 그렇게 살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이 그런 분이시고 그런 삶을 친히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존경하는 선생님의 전신사진을 자기 방에 크게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 선생님의 가르침과 삶의 모습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그래서 방에 들어갈 때도 한 번 쳐다보고, 거기서 책을 보고 일할 때에도 한 번 쳐다보고... 그렇게 그분의 삶을 늘 기억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실 예수님을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그분의 작은 모습 하나까지 닮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유월절 어린 양 같은 초라하신 모습, 말 없으신 모습, 죽음으로 나아가시는 모습... 우리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 이기적이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낮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고난주간의 마지막 밤... 여러분들은 우리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하시고 그 귀하신 모습을 다시 한번 새기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