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42달, 1,260일
계 11:1~3
2022.04.01.
우리는 10장에서 힘센 천사의 사자 같은 선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천사는 두 가지 내용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할 때 하나님의 어떤 비밀이 이루어진다는 선포입니다. 여기서 그 비밀은 교회의 패배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교회의 패배를 통해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초라한 현실 교회에 임하고 또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의 연약함과 패배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다른 하나는 요한에게 이 두루마리를 먹고 세상에 다시 예언하라는 선포입니다. 지난주에 그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10장의 내용이 오늘 본문인 11장으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11장에서는 42달의 패배와 1,260일의 예언이 나옵니다.
42달의 패배는 하나님의 성전 바깥마당이 이방인에게 넘겨져 42달 동안 짓밟힌다는 말씀입니다.
1,260일의 예언은 하나님이 세운 두 증인이 1,260일 동안 세상에 예언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10장의 교회의 패배는 11장의 성전 바깥마당의 짓밟힘으로 이어지고, 10장의 요한의 예언은 11장의 두 증인의 예언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면 11장에서 짓밟히는 성전 바깥마당과 예언하는 두 증인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네, 그것은 모두 교회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11장의 전체 의미는 한 마디로, 교회의 고난과 예언입니다. 따라서 10장과 11장의 의미는 동일합니다.
그러면 이제 성전 바깥마당과 두 증인이 왜 교회를 상징하는지, 그래서 11장의 말씀이 왜 교회의 고난과 예언을 상징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1장 1절은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2절은 성전의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라고 하고 그 바깥마당은 이방인에게 42달 동안 짓밟히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선 이 측량의 의미는 보호의 의미입니다. 구약에서 측량은 측량을 통해 그 사람을 자기 소유로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2절에서 측량하지 않은 바깥마당이 이방인에게 유린된다는 내용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성전과 제단과 거기서 경배하는 자들은 무엇을 의미하고, 또 바깥마당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또 성전과 제단과 거기서 경배하는 자들은 보호를 받지만, 왜 바깥마당은 보호를 받지 못할까요?
그런데 일단 이것은 문자적인 성전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어떤 사람들과 무리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이 비유적으로 쓰였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럼 측량을 통해 보호받는 자들은 누구이고, 보호받지 못하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여기에 대해 많은 해석들이 엇갈리지만,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이것은 어떤 두 종류의 다른 무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무리의 사람들 즉 교회 공동체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종말의 교회가 측량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만 일부분또는 일정부분은 그 기간 내내 계속 짓밟히고 타격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1, 2절 말씀이 종말의 교회 공동체와 관련된 말씀이라는 것은 그것이 42달 동안 짓밟힌다는 말씀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42달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교회가 짓밟히고 고난받는 시간이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익숙한 3가지 인상적인 시간 표현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바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42달, 1,260일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이 3가지 시간은 다니엘서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부터 온 동일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다니엘서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하나님의 백성의 일정한 환란 기간을 의미합니다. 특히 성전이 유린당하는 환란 기간을 의미하죠.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7:25) “~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단12:7)
그래서 요한은 이와 같은 의미의 다니엘서의 시간을 가져와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은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의 환란과 고난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이것은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 이 시간 언급들을 모두 찾아보면 그 시간이 그런 의미라는 것이 또다시 확인됩니다. 이 시간들은 요한계시록 안에서 총 5곳에 나옵니다.
11장 2절 ‘성전 바깥마당의 마흔두 달 동안의 짓밟힘’,
11장 3절 ‘두 증인의 1,260일의 예언’,
12장 6절 ‘여자(교회)의 광야에서의 1,260일의 도피와 양육’,
12장14절 ‘여자(교회)의 광야에서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도피와 양육’,
13장 5절 ‘짐승의 땅에서의 마흔두 달 동안의 권세’
여기서 두 증인의 예언 기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4곳은 모두 성전 혹은 교회가 환란을 당하는 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여기서 이 시간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이 5군데의 모든 시간을 동일하게 ‘3년 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전 바깥마당이 짓밟히는 시간이나, 두 증인이 예언하는 시간이나, 교회가 도피하고 양육 받는 시간이나, 짐승이 땅에서 일하는 시간이나 모두 ‘3년 반’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이 발생하는 ‘3년 반’의 시간은 과연 언제일까요?
네, 이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종말의 시간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은 달리 말해 교회 시대 전체이고, 교회가 예언하는 시간이고, 또한 사탄과 짐승이 교회를 박해하고 악한 권세로 역사하는 시간입니다.
물론 요한계시록의 해석 가운데에는 이 ‘3년 반’의 시간에 대해 다른 견해들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미래주의 혹은 문자주의에 입각하여 보시는 분들은 이 ‘3년 반’을 최후 종말의 ‘7년 대환란’으로 해석합니다.
그 해석은 다니엘서 9:27에 언급된 남은 한 이레를 최후 종말의 한 이레로 생각하고, 그것이 ‘전 3년 반’과 ‘후 3년 반’의 ‘7년 대환란’으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여자가 광야로 도피하는 것은 ‘전 3년 반’ 사건이고, 짐승이 마흔두 달 동안의 일하는 것은 ‘후 3년 반’의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이렇게 이 견해는 최후 종말에 ‘7년 대환란’ 기간이 있다고 보고,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그 기간 전후 혹은 중간에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휴거와 지상 재림이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방법이 이른바 역사적 전천년설 혹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입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도 그렇고 또 제가 참고하는 NIGTC 주석도 그렇고... 요한계시록이 말씀하는 이 ‘3년 반’을 최후 종말의 ‘7년 대환란’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요한계시록이 말씀하는 다섯 군데의 ‘3년 반’에 대해서 ‘이것은 ‘전 3년 반’이고 저것은 ‘후 3년 반’이고...’ 이렇게 나누는 것은 분명 자의적인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런 구분을 통해 요한계시록이 직접 말하지 않는 7년 대환란을 만들고, 또 거기에 요한계시록에 없는 공중 재림이나 휴거를 덧붙이는 것은 분명 자의적이고 무리한 해석입니다. 7년 대환란이나 공중 재림이나 휴거나 그 근거를 몇몇 성경구절에 두고 있지만, 그러나 그 구절들은 달리 해석될 수 있기에 그 근거는 그리 충실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3년 반’을 최후 종말의 7년 대환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종말의 기간 전체로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미래주의 관점으로 즉 최후 종말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 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역사 전체에 일어날 일을 상징적으로 예언한 책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의 해석을 절충주의 해석이라고 합니다.
물론 최후 종말에 가까울수록 사탄과 짐승의 역사는 절정으로 치닫고, 박해도 심각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역사와 교회에 대한 박해는 종말 시대 전체에 일어나는 보편적인 일이지, 7년 대환란 기간에만 특별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튼 이렇게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3년 반과 42달과 1,260일을 이해하면, 42달 동안 성전 바깥마당이 짓밟힌다는 것은 교회가 종말의 시간 동안 늘 박해와 고난을 받는다는 사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성도님들은 이와 같은 마지막 때의 교회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면서, 교회와 개인 신앙을 잘 지켜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