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믿음찬교회 0 61 07.30 13:51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막 8:27~30
2024.07.26.

오늘 본문부터 마가복음은 2부가 시작됩니다.
이제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런데 일단 그 방향을 예루살렘이 있는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잡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빌립보 가이사랴로 가셨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갈릴리 북쪽 40km 정도에 위치한 그 지역 중심 성읍으로, 헤롯 빌립이 헤르몬산 남쪽 경사지의 그 성읍을 잘 정비해 황제에게 헌정하고 가이사랴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본래 지중해 바닷가에 항구도시 가이사랴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과 구분하기 위해 이곳을 빌립보 가이사랴 또는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이 주로 거주하는 그 성읍 주변 마을로 가셔서 제자들과 조용한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침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제자들의 이 말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런 위대한 예언자와 선지자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그런 일반적인 평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다시 중요한 질문을 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대답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답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의 많은 메시아 예언을 통해 만들어진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차 다윗과 솔로몬 같은 메시아가 와서 유대 민족을 해방하고 부흥시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구약 메시아 예언의 본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유대 민족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구원의 메시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올바르게 대답하였지만, 그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퍼져나가면, 예수님은 그런 잘못된 메시아 사상의 메시아로 추종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제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2년이 넘도록 따라다닌 눈앞의 이분이 누구신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예언자들이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이신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이 모든 일이 뭔가 자신들의 예상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실체를 알게 된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믿는 우리들은 물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아 즉 그리스도이시고,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예수님의 실체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는 예수님이 메시아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님을 오해하는 대표적인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1세기 중반을 넘어서 마태복음이 나올 당시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의 가라지 비유에서 그런 조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가라지 비유는 이미 교회 안에 이질적인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1세기 후반 우리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다르게 말하는 어떤 신자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은 인정하지만, 예수님의 인성과 그분이 육체로 오신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일서는 이런 그들을 공동체 밖으로 내보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본성에 관한 논쟁과 논란은 이후에도 계속되다가, 최종적으로 451년 칼케돈 종교회의에서 예수님의 신성과 인정을 확립하게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으로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논쟁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에 와서 다시 재현되었습니다.
성경 비평이 대두되면서 이런 주장이 나타났는데,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와 역사 속의 실제 예수는 다르다는 주장입니다. 복음서가 말하는 예수는 믿는 자의 신앙적 관점에서 신으로 고백된 예수이고, 실제 역사 속의 예수는 신이 아닌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그런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역사적 예수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역사적 예수를 발견할 수 있는 근거가 성경 외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와 같은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 세상은 예수님을 인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 상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세기 때와 같이, 예수님의 신성만 중요시하고 그분의 인성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바울서신에 비해 복음서의 중요성이 현저히 낮습니다. 복음서를 보더라도 요한복음과 마태복음을 많이 보고,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은 잘 보지 않습니다.
그 결과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신성을 가지신 구원의 주님으로는 잘 알지만, 내 삶의 실제 주님으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전에는 전 세계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부러워하고 칭찬했죠. 그러나 지금은 한국교회를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왜 이와 같은 급격한 쇠퇴가 오게 되었을까요?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예수님을 신성을 가지신 구원의 주님으로만 믿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 믿고 천국 가는 신앙만 추구한 것입니다. 목회자들도 그랬고 신자들도 그랬고 다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신성만 인정하고 인성을 부인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그러면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과 삶이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신성을 가지신 그분의 구원은 그 자체로 완전한 구원이 되어 인간의 노력과 순종이 필요 없는 구원이 됩니다.
그러면 요한일서가 말씀하는 바와 같이 신앙과 삶은 분리되고, 계명을 지키지 않고, 죄를 부인하고, 사랑을 잃어버리고, 형제를 미워하고, 공동체가 깨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타깝게도 지금 많은 한국교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런 모습이 된 이유는 예수님의 인성에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알뿐, 그분의 정의로운 모습과 개혁적인 모습을 잘 모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싸우시고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신 모습을 간과합니다.
우리는 복음서가 보여주는 이런 생생한 예수님을 보지 않고, 우리의 제단에 구세주로 모시고 경배하는 예수님만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와 동일한 종교적 숭배이지, 기독교 본연의 제자도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 복음은 그분의 구원 행위만이 아니라 그분의 삶 전체가 복음입니다.
마가복음 1:1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앞으로 마가복음이 보여주는 그분의 삶과 죽음과 사역과 말씀 전체가 복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삶 전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서가 말씀하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다 믿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일반 세상은 예수님의 신성을 몹시 폄훼하고 부정하고 있죠.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성경의 증거와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힘써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분의 신성만큼이나 그분의 인성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분의 삶을 배우고 그분의 길을 배우고 그분의 모습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 한 절 한 절은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만 믿는 반쪽 신앙이 되어선 안 됩니다. 이 땅에 오셔서 그 귀한 삶을 사신 나의 주님으로 온전히 믿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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