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씨 뿌리는 비유와 네 가지 밭 (1)

믿음찬교회 0 152 02.06 14:03
씨 뿌리는 비유와 네 가지 밭 (1)
막 4:10~20
2024.02.02.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는 결국 2가지가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씨이고, 다른 하나는 땅입니다.
이것은 작은 농사라도 짓는 사람이라면 잘 아는 내용입니다. 씨가 좋아야 하고, 땅이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주에 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씨는 말씀인데 그 말씀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씨 뿌리는 비유는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자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통치가 자라지 않는 문제는 첫 번째로 씨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주에 우리의 교회와 개인 신앙 속에 하나님 나라라는 씨가 제대로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이제 이 비유 말씀의 또 다른 주요 내용인 땅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땅에 대해 말씀하시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고 성장하는 것을 말씀하시려면 사실 씨만 말씀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씨만 말씀하시지 않고 4가지 땅을 말씀하시는 데에는 큰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씨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이 그분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예수의 제자나 가족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은 아직 예수의 외부자이고, 그런 외부자들 가운데에는 예수를 적대하는 무리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와 해방의 복된 소식인데, 왜 그런 복음을 모든 사람이 다 환영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복된 것이라면, 왜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부만 받아들일까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종류의 땅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복음에 반응하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첫째는 길 가입니다.
이것은 길 가와 같은 사람입니다. 당시는 씨를 뿌리다보면 길 가에 씨가 떨어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길 가는 아시다시피 딱딱한 땅이라 씨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거기에 별다른 의미와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 사람들은 세상 나라와 자기 자신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통치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질감이나 불편함을 느낄 뿐이죠.
그래서 이들은 이 말씀을 더 이상 생각하거나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그런 이 사람들에게서 사탄은 그 말씀을 즉시 빼앗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 땅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인 말씀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세상 풍조를 쫒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삽니다.
그들은 자기는 자기의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물 안에 있듯이 결국은 죄와 사탄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전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 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그 사람 안에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도 그것이 아주 얕은 수준이어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여기서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것은 은혜를 받지만 그 은혜가 아무런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그런 교회가 될까 염려했습니다. 그것을 염려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일시적으로 은혜를 받아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내 신앙을 보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다스리심이라는 열매가 맺히지 못하면, 헛된 은혜가 되고 맙니다.

저는 언젠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 목회자의 담임목사 시절 한 일화를 기사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는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 독특한 순서가 있었다고 합니다. 담임목사가 제일 먼저 나가고, 그다음에 앞자리에 앉은 정치인, 고위직 공무원, 군 장성과 같은 사람들이 일 열로 나가고, 그다음에 일반 신자들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사 때에도 그런 순서가 지켜졌다고 합니다. 왜 교회 안에 그런 세상의 서열과 모습이 그대로 들어와 있을까요? 물론 지금은 새로운 담임목사님이 세워지셨고, 그래서 지금도 그런 순서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그 목사님이 그런 순서를 의도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한국교회의 하나님 나라 이해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그런 나라일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 나라와 다른 나라로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는 큰 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작은 교회에도 동일하게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한 번 지방회에 참석하여 점심식사를 하면서,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단의 가장 큰 교회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그 교회의 세습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가 그때 세습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한 분이 세습은 개 교회의 사정이고 개 교회가 결정할 문제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입니다. 한 분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그 이야기는 그냥 끝나버렸습니다.
그때 우리 지방회는 다 고만고만한 작은 교회들인데... 세습을 옹호하는 그런 말을 제가 그렇게 가까이에서 직접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세습은 하나님의 나라와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세습이 이루어지면, 주님이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목사가 교회의 주인이 됩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가게 됩니다.
이렇게 지금 많은 교회는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하나님 나라 이해가 없는 안타까운 모습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제 자신이 이런 말을 하기엔 적절치 않지만, 지금 상당수 교회는 씨에도 문제가 있고 땅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지도 못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이 제대로 스며들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제가 이렇게 첫 번째 땅에 대해 길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땅도 문제이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땅을 걱정하고 신경 쓸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교회와 신자들은 첫 번째 땅부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첫 번째 땅부터 경각심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길 가는 나와 전혀 무관한 땅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첫 번째 땅 문제를 해결할 답은 단순합니다.
우리 교회들과 저와 여러분이 늘 깨끗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자라면 됩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주장하심이 커지면 됩니다. 내 뜻과 내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그러면 이 첫 번째 땅은 극복됩니다.
성경의 다른 좋은 말씀 다 받아들여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말씀 안 받아들이면 첫 번째 땅은 극복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 길 가의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아무쪼록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잘 받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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