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새 언약의 역사하심

믿음찬교회 0 119 2023.12.31 11:46
새 언약의 역사하심
히 8:7~13
2023.12.31.

2023년 마지막 날을 특별히 주일 예배로 보내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항상 뜻깊은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가고, 어떤 사람들은 해맞이를 가고, 어떤 사람들은 파티를 하지만, 그런 것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는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일수록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에게 큰 은총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송구영신을 대하면서, 젊은 시절 저는 12.31과 1.1은 그저 오늘과 내일일 뿐인데, 송구영신이라고 특별히 여길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젊은 시절을 지나, 또 삶의 어려움과 다사다난함을 잘 모르는 젊은 시절을 지나... 나이를 먹게 되면, 송구영신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도연명의 이와 같은 시가 있습니다.
동쪽 울타리 밑의 국화를 따 드니, 저 멀리 남산이 보이네
산 기운은 해 저물어 아름답고, 날던 새들 짝을 지어 돌아오네
이 가운데 참다운 뜻이 있으니, 말하려다 말을 잊고 말았네
우리는 시간이 지나야 보게 되고 소중한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올 한 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올 한 해 유독 병원을 자주 간 것 같습니다. 안과도 가고 정형외과도 가고... 그러면서 좋은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버거운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노동을 끝낸 사람이 고단한 숨을 내쉬는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예전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죠. ‘사는 게 기적이다...’ 살면 살수록 삶이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어려워지고 벅찹니다. 작은 기쁨, 큰 슬픔... 우리는 그렇게 이 세상과 올 한 해를 살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기도하며 가만히 하나님을 생각해보면, 잔잔히 밀려오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습니다. 캄캄한 성소 안에 켜진 작은 촛불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늘 인도해주신 것이 아닌가... 그런 감사와 평안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성령님께서 주시는 그런 감사와 평안의 마음이 오늘 이 시간 있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오늘 말씀은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가 느끼는 바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입니다. 새 언약의 역사하심... 먼저 이 제목을 오해하시면 안 되겠습니다. 새 언약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산행을 좋아하고 가볍게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해서 산을 가다보니... 절을 자주 가보곤 합니다. 서울에 있는 큰 교회는 별로 가본 곳이 없지만, 한국에 있는 웬만한 큰 절은 많이 가본 것 같습니다.
설악산에 가면 한 암자가 있습니다. 백담사에서 4시간 정도 올라가면 도착하는데, 법당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얼마나 좋은지... 목사들은 조금 이상한 버릇이 있어서 좋은 곳을 가면 ‘여기서 교회 하면 좋겠다, 여기서 예배드리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때 법당에는 스님 한 분이 염불을 하고 있었지만, 저는 혼자 거기서 예배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불교와 절과 승려들은 그런 곳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이죠.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은 그런 깨달음의 신앙은 아닙니다. 깨달음은 우리 신앙의 우선순위에서 조금 뒤에 있는 내용입니다. 기독교는 우리 스스로 무엇을 깨닫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거나 제일 앞에 두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 신앙의 제일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고, 사랑의 종교이고, 실천의 종교이고, 그리고 언약의 종교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신앙의 제일 앞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에서 말씀을 빼거나 사랑을 빼거나 실천을 빼거나 언약을 빼면... 올바른 기독교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를 가장 특징 짓는 내용 중에 하나가 바로 언약입니다.

언약이 무엇인지 우리는 압니다. 언약은 약속입니다. 그런데 훨씬 높은 약속이죠. 상호 간에 책임과 의무와 복과 특별한 혜택이 있는... 단단한 약속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그와 같은 언약의 종교인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약속을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아담에게도 그러셨고, 아브라함에게도 그러셨고, 모세에게도 그러셨고, 신약의 우리에게도 그러시고...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우리 사람에게 큰 축복입니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존중하시고, 선택하도록 인도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참 좋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하나님의 첫 언약과 새 언약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새 언약이 첫 언약에 비해 어떤 점에서 탁월하고 좋은지... 그 특별한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첫 언약도 참 좋은 언약이었습니다. 율법도 은혜의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작정 율법을 주시고 그것을 ‘내 뜻이니’ 지키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보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해방하셨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은 그런 은혜로운 구원을 행하신 후에,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고 자신의 뜻을 마침내 율법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본래 은혜의 율법입니다. 아울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명확하게 율법으로 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신들은 자신의 뜻을 명확히 말하지 않는 신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모호한 신의 뜻은 인간을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불구하고 율법과 첫 언약은 부족한 율법과 언약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7절에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이 말씀은 율법과 첫 언약은 분명 좋은 것이었지만, 흠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율법과 첫 언약 자체에 흠이 있거나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마음 중심으로부터 변화시키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의 원형이 아니라는 점에서 완전하지 못하고 따라서 흠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이미 구약 안에서 새 언약을 예고하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히브리서 기자가 지금 인용하는 이 말씀은 예레미야서 말씀입니다. 이 예레미야 말씀은 첫 언약을 대체할 새 언약이 어떤 언약인지...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새 언약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10절 말씀입니다. 그것은 율법과 달리 우리 마음과 생각에 역사하시고 임하시는 능력의 율법이자 능력의 언약입니다. 옛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주었지만, 우리 바깥에 있을 뿐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는 않았습니다. 구약에서 성령은 소수의 사람에게 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성령님은 우리 모든 믿는 자에게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우리 가운데 적극적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새 언약은 능력의 언약입니다.
둘째, 11절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능력의 언약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모르고 불신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고, 시대마다 우상을 숭배했고, 하나님을 끝내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새로운 하나님의 공동체는 완전한 공동체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압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신약의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하나님의 역사로 그와 같은 순수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그와 같은 순수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기대하며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부족하고 보잘 것 없지만, 그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점에서 함부로 생각할 수 없는 곳입니다.
셋째, 12절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와 불의를 영원히 용서하시는 영원한 용서와 은혜의 언약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내용을 이제 9장 이후 예수님의 죽음과 희생으로 다시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새 언약이 어떤 언약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새 언약은 첫째 능력의 언약이고, 둘째 영원한 용서와 은혜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새로운 언약을 통해 지금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는 이 두 가지 내용 중에 첫 번째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두 번째 내용은 9장 이후에 자세히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주목할 말씀은 이것입니다. 새 언약은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능력의 언약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그렇습니다.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알지만, 그 길을 잘 걷지 못합니다.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알면서도 자신의 뜻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우리에게 선한 양심을 주셨지만, 양심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에 연약합니다. 양심은 때가 묻고 변하고 부패하고 상실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바른 길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그 길을 걸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을 주시는데, 이제는 그 법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두시고 기록하십니다. 우리의 마음 판에 하나님의 뜻을 새겨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놀라운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새 언약의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역사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마음과 생각을 강한 능력으로 바꾸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약적으로 이해하면, 그것은 홍해를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그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갈멜산에서 불을 내리시고 주의 사자가 앗수르의 18만5천을 하룻밤에 치시는 그런 능력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믿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많은 역사를 보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여전히 자기 중심적인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우리에게 새로운 복음의 말씀을 주시고 그에 더하여 우리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는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영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새로운 방법, 그 새로운 성령님, 그 새로운 언약 관계... 이 모든 것이 한 마디로 새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역사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쁘고 정신없고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예배 드리고 성경말씀도 잘 안 읽고 내 뜻대로 사니까... 그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기도도 메마르고 말씀도 메마르고 우리는 형식적인 신자로 신앙생활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말씀에 귀 기울이고 조금만 하나님을 붙들고 한 걸음만 주님께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놀랍게 감싸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새 언약의 시대이고 새 은혜의 시대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사도바울의 이 말씀은 이사야서 49장 말씀에서 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이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네, 우리는 이와 같은 은혜의 하나님을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손을 내밀면 이와 같은 은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만 기도하면, 우리 마음의 변화를 느끼게 됩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시작한 기도는 웬지 모를 소망과 희망으로 끝나고, 지친 마음으로 시작한 예배는 웬지 모를 은혜와 감사로 충만하게 끝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신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머무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등잔 같은 존재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기름을 흘려보내주십니다. 요한일서는 이 진리를 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왜 이와 같은 역사가 우리에게 있을까요? 우리는 새 언약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올 한해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은혜 속에 오늘까지 왔습니다.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고, 얼마든지 쓰러질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주셨습니다.
죄가 우리를 넘어뜨리고, 돈이 우리를 넘어뜨리고, 사람이 우리를 넘어뜨리고, 건강이 우리를 넘어뜨리고, 세상이 우리를 넘어뜨리고... 우리에겐 많은 상처와 낙심과 괴로움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올 한 해를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한 해를 돌아보는 우리의 고단한 마음은, 이 시간 감사와 찬송의 마음으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새 언약의 역사하심... 하나님은 오늘도 내일도 그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약속을 지켜야 하겠죠.
다가오는 2024년에도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을 제일 우선순위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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