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사람을 낚는 어부

믿음찬교회 0 197 2023.07.25 15:33
사람을 낚는 어부
막 1:16~20
2023.07.21.

우리는 지난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그날의 즉흥적인 사건이 아니라, 평소 그들의 삶과 마음 중심이 하나님을 찾고 있었던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이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떤 교훈과 은혜를 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이 제자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개 우리는 베드로를 은근히 무시하죠. 고기 잡는 어부 출신에 실수 많고 엉뚱하고... 안드레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사역과 공생애 동안 거의 존재감이 없는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드레는 처음에 예수님을 만난 일 외에는 오병이어 기적 때 이렇게 말한 것이 전부입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요6:8~9) 이것도 요한복음이 안드레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르고 지나갈 뻔했습니다.
한편,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선 그렇게까지 폄하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들이 갈릴리 어부 출신이라는 점을 우리는 늘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개 우리는 고기 잡는 어부였던 그들을 예수님이 온전히 은혜로 부르셨다고 자주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을 합당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어부였지만, 세상의 현실과 자기 민족의 현실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던, 깨어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든 부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부르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자질과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신적 요소만 말하고 인간적 요소는 무시하고 그들이 그저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제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한국교회는 은혜를 너무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원도 은혜고 부르심도 은혜고 열매도 은혜고 ... 다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은혜로 하려고 합니다.
은혜를 자주 말하는 것... 뭔가 영성 있고 좋은 신앙처럼 보이시죠?
그러나 여러분, 사실은 그런 모습이 신앙이 좋아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거기엔 인간의 의무와 책임과 준비 없이 하나님을 바라는 잘못된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은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워지고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고 은혜를 자주 말씀했죠. 그러나 바울은 은혜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모든 수고를 다 한 후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분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신앙에 하나님의 은혜만 알아선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제자들은 단순히 주님의 은혜로 갑자기 제자가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시대의 현실을 보며 힘들어했고, 고민했고, 하나님을 찾았던 사람들입니다. 만약 이들이 자기 실속만 차리고 자기 삶만 추구했다면, 잘 살 수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농민들은 자기 땅이 없고 무척 가난했지만, 그들은 자기 배를 가지고 고기를 잡아 그것을 팔았던 중산층이었습니다. 특히 야고보와 요한의 경우는 품꾼들을 데리고 고기를 잡을 만큼 잘 살았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들이 ‘시대와 현실이야 어떻든 나만 잘살자’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사야도 그런 사람이었죠. 북이스라엘이 패망하고 이제 심판의 먹구름이 남유다를 향해 다가올 때, 이사야는 그런 시대와 나라의 현실을 보고 홀로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깨어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자신의 선지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 안에 어두운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도 이웃도 돌아보지 않고 선악도 없고 정의도 없고 시대 감각도 없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 오직 자기중심과 자기 이익과 자기 교회와 자기 구원에만 골몰한 채 살아가는 목회자와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이야 자기만 생각하고 그렇게 살 수 있지만,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선 안 됩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고 역사를 보고 현실을 보고 이웃을 보면서, 시대의 양심과 등불과 소망이 되고자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특정 은사를 받은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세상과 역사를 그렇게 영적인 눈으로 보고 아파하는 사람이 진정한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주님이 말씀하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드레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이 부르실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미숙하고 서툴지만 예수님을 따라 나설 만큼 깨어있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다시 보아야 하고, 또 그들처럼 예수님을 따라나설 수 있는 깨어있고 준비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이들에게 말씀하신‘사람 낚는 어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개 이 말씀을 그들의 사명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대부분의 설교는 이 말씀을 가지고 전도설교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을 그들의 자리에서 일으켜, 하늘의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큰 비전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풀어서 말한다면 이런 뜻입니다. “너희들은 고기 잡는 어부지? 그런데 이제부터 내가 너희를 하늘의 어부가 되도록 하겠다.”
그래서 이 예수님의 말씀은 만약 네가 선생이라면 하늘의 선생이 되게 하겠다, 만약 네가 사업가라면 하늘의 사업가가 되게 하겠다, 만약 네가 음악가라면 하늘의 음악가가 되게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의 삶과 존재의 의미를 하늘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마지막 4중주’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첼로로 구성된 현악 4중주 연주단 ‘푸가’는 25년 된 명성 있는 연주단입니다. 거기 4명의 연주자가 나오는데, 모두 음악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각자 혹은 서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 그 연주단이 깨어질 위기를 맞게 됩니다. 가장 연장자인 첼로의 로버트 교수는 파킨스병으로 인해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되고,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맡은 피터와 줄리엣은 부부인데 이혼 위기에 놓이고 또 외동딸과의 관계도 엉망이 됩니다. 한편 제1 바이올린의 다니엘은 피터와 줄리엣 부부의 외동딸 알렉스와 사랑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들 네 사람은 음악에 모든 것을 걸고 함께 살아왔지만, 어느 날 각자 혹은 서로 간에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 흔들리게 됩니다. 물론 그 영화는 그 연주단이 마지막 연주를 하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칩니다. 희망적인 결말이죠. 그러나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촉망받는 연주가가 되고 명성 있는 연주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모든 음악가의 꿈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 인생의 어려움과 문제가 닥치면서 그들의 평생의 꿈과 결실인 음악과 연주는 무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연주단은 불명예스럽게 해체되고 누구는 불치의 병을 얻고 누구와 누구는 관계가 끊어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쓸쓸한 모습들로 그렇게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영화는 희망적으로 끝나지만, 그러나 우리 현실은 동일한 상황에서 비극적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이 땅의 모습으로만 인생이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 있는 우리의 모습은 이 땅과 함께 초라해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내 분야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길을 걷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해도, 우리는 얼마든지 여러 문제와 함께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 땅에만 목적과 소망을 두어선 안 됩니다.
성공한 목회자들의 경우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해서 큰 교회로 성장시키고 큰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정말 최선을 다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힘으로 자신의 건강도 돌아보지 않고 사생활도 없이, 24시간 1년 12달 목회에 올인하는 인생을 삽니다. 그러나 그분의 목회가 하늘의 차원으로 승화되지 못하면, 아무리 겉으로는 성공적인 목회가 된다 해도 그것은 그저 이 땅의 사업과 일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업적과 일을 불로서 시험할 때 다 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존재의 의미와 차원이 하늘로 올라가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우리의 일과 삶에 하늘의 의미와 차원이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그런 삶과 의미와 차원으로 이끄시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초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어부가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냥 인생이 아니라 하늘의 인생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냥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제자들은 훌륭했고 예수님은 놀라웠습니다.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고, 예수님은 부활하신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과 저도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런 영적인 하늘의 인생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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