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20220724 주보

믿음찬교회 0 269 2022.07.24 11:50
오늘 본문은 가룟 유다의 배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배반자의 대명사이죠. 4복음서는 모두 가룟 유다의 배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복음서가 모두 가룟 유다의 배반을 말씀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4복음서 모두 그의 배반의 이유를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성경을 읽는 우리 모두의 오랜 궁금증이 되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일에 대해 간혹 유다 편에 서서 유다를 변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필요악 역할을 하였고, 성경의 예언을 이루었고, 그래서 유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러시아의 어떤 작가는 유다가 예수의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스스로 배신자의 짐을 짊어졌다는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생각이나 주장은 자유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사사기 시대처럼 각자 자기 소견에 옮은 대로 생각하고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성경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어디를 가리키는지 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때론 성경이 어떤 문제를 명확하게 말씀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우리 생각과 주장의 자유의 기회로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시험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런 문제에서 자기 생각이 펼쳐지고 그래서 자기의 길로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런 문제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한 사람은 더 멀어지고, 한 사람은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겐 신·불신의 이와 같은 보이지 않는 역사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은 양으로 염소는 염소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성경말씀이나 어려운 내 삶이나... 내 생각을 앞세우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가룟 유다의 배신의 이유를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기보다는 복음서 안에서 최대한 찾아보고, 나아가 그것을 바탕으로 그의 배신이 선생을 배반한 단순한 일반적인 배신인지, 아니면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는 배신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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