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20210815 주보

믿음찬교회 0 26 09.16 22:37
그 밤에 배를 타고 떠났던 제자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거센 바람과 물결이 제자들의 항해를 위태롭게 하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수심이 깊고 돌풍이 불 때가 많습니다. 그때 시간은 밤 4경이었는데, 오늘날로 하면 새벽 3~6시 사이였습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이 아셨습니다. 그리고 바다 위로 걸어 제자들에게로 가셨습니다. 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을 아무렇지 않게 하실 때가 있죠.
 구약에 보면 바다 위를 걷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그런 말씀이 있는 것은 고대인들에게 바다란 신화적인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미지의 어둡고 깊은 영역에 신화적인 신과 괴물이 존재한다고 믿었죠. 그래서 하나님이 바다를 밟는다는 것은 그런 신화적인 신들과 존재들을 주관하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둘째 날에 물 가운데 궁창을 만드시고 물과 물을 나누시는 것도, 그 배경에는 거기에 있는 신화적인 악한 존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드러내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물 위를 걸으심으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제자들에게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런 예수님을 그 밤의 물결치는 바다 위에서 보게 된 제자들은 정말 무섭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면 상당히 두렵습니다. 천사만 봐도 상당히 두렵죠. 그것은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아주 신비하고 두렵고 떨리는 경험인데, 그런 경험을 어떤 신학자가 누미노제 체험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나의 수호신조차 겁을 집어먹는 듯한 느낌... 그것이 누미노제이죠. 그 밤 갈릴리 바다 위에서 제자들은 그런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제자들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제자의 삶과 사역을 살아가려면 그와 같은 특별한 체험과 경험치가 있어야 함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이 사건을 말하면서 다른 복음서가 말하지 않는 한 가지 내용을 더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건 안에 있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개인적인 에피소드입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에게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하죠. 예수님이 오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결국 베드로는 물에 빠지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구해주시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사건 안에 이렇게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의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들어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언뜻 보기에, 베드로의 엉뚱함이 낳은 해프닝 같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에피소드와 단순한 해프닝 같은 일을 성경이 기록할 리는 없습니다. 유명한 말이 있죠.  ‘성경은 지면을 낭비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의 본질은 제자들의 개인적인 특별한 체험입니다. 그 체험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고 예수님이 그를 건져주신 사건의 본질도 베드로의 개인적인 특별한 체험입니다. 그 체험은 베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특별한 체험이 되고, 그래서 베드로가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에피소드나 해프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의... 잊을 수 없는 신앙체험이라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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