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20210523 주보

믿음찬교회 1 123 2021.05.23 11:54
힘든 예수님의 파송 설교는 이제 절정을 향해 나아갑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왔노라.” 여기서 말하는 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린 비슷한 말씀이 누가복음에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눅12:49~51)
마태복음의 ‘검’과 누가복음의 ‘불’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것은 싸움과 분쟁을 의미하죠. 우리가 제자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뜻이 부딪히고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가 부딪칠 때, 마치 검의 불꽃이 튀듯이 싸움과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주신 ‘검’과 ‘불’을 가지고 세상의 죄와 어둠과 거짓과 불의와 싸우며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세상의 죄와 어둠과 거짓과 불의와 싸우는 우리의 삶은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당연히 이 말씀은 사랑하는 가족의 의미를 부정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럴 경우에 결단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가족의 의미가 더 컸죠. 가족과 갈등하고 떠난다는 것은 당시로선 매우 감당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의 길은 그런 전통적인 가족 관계조차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특히 마가복음 3장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아온 제자들과 새로운 영적인 가족을 형성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며...”(막3:13~14) 이렇게 자신의 제자들과 새로운 가족을 만드신 예수님은 자신을 찾는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3:33~35) 
검과 가족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제 드디어 십자가를 말씀하시게 됩니다. 십자가라는 말이 마태복음 안에서 지금 처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예수님의 파송 설교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실제 십자가는 잔인한 사형 도구입니다. 그것은 주로 흉악한 범죄자 및 국가나 황제의 권위에 도전한 반역자와 정치범을 처형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이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불가피하게 반국가적이고 반체제적인 일이고, 그래서 그런 참혹한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신앙이 죽음을 넘어서지 못하면, 그건 진정한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교회의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Comments

이경희 2021.05.23 19:25
목사님 은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