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20200809 주보

믿음찬교회 0 323 2020.08.09 13:02
오늘 등장하는 ‘한 사람’은 마가의 독특한 표현이기도 하다. 같은 사건을 다루는 다른 누가복음은 관원이라고 하고 마태는 청년이라고 하였다. 이 세 복음서를 합치면 부자 청년 관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예수님과 이 부.청.관.의 대화를 살펴보자. 이 청년은 예수님에게 무엇인가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무엇이 부족할까? 하나님이 채워 주셔야 할 영생이 없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오늘 이 청년은 영생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간절함과 진지함은 대낮에 예수님께 달려 나와서 무릎 꿇고 엎드릴 정도로 용기 있고 결단력이 있는 청년이라는 사실이다.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나 이 사람의 질문에는 뭔가 아직 뭔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첫째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모르는 것이다.
다음은 무엇인가를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줄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 하신 말씀은 정말 파격적이지 아니 할 수 없다.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젊은이가 소홀히 하고 무시하고 무관하게 여기고 있던 것 아무 의식 없이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있던 것을 지적하시고 계신 것이다.
이 부.청.관.에게 부족한 것은 재물과 젊음과 성공보다도 귀한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재물을 포기하면 진정한 자신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부.청.관.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였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올 때 무슨 답을 기대하고 나아오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답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답인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바라고 사는가 보다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계시는 가를 살피고 따져봐야 할 것이다.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축복일까?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가지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재물은 없어도 하나님 한 분이면 되는 삶을 살 수있나?
무소유라는 기독교적 의미는 비우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 없어 지면 그 자리에 하나님 것이 채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21절)
오늘 본문은 부.청.관.의 선택이 얼마나 비극으로 끝날 것인지를 암시하여 주고 있다. 여생을 슬퍼하면서 근심 가운데 재물도 젊음도 성공도 누리지 못하는 사후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지옥 같은 생을 살아가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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