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20200517

믿음찬교회 0 279 2020.05.17 12:26
요즈음 우리는 뜻하지 아니하는 재난을 겪으며 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우리는 목숨에 큰 위협을 받기 까지 하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재난을 허락하시는 뜻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 한다. 이런 어려움 앞에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질문을 해 본다. 왜 사는가, 왜 밥을 먹는가, 왜 돈을 버는가, 왜 결혼하는가, 왜 운동하는가를 생각하게 하신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런 질문에 어떤 답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갑작스럽게 당하는 어려움을 재난이라고 한다. 재난(災難)이라는 단어는 갑자기 불이 나서 어려움을 겪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재난을 영어로 번역하면 disaster라고 한다. 이는 두 단어의 합성이다. dis + aster 디스는 없다는 말이고 애스터는 별이라는 말이다. 별이 사라지는 것이 재난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인생을 항해로 비유하면 항해를 위하여는 별(star)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이 없으면 풍랑 속에서 항해가 불가능 하게 됨으로서 disaster 재난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코로나19라는 재난이 살아야 할 의미와 목표를 상실하게 되는 혼돈의 세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삶의 목적을 발견할 수 없다. 삶의 목적을 알지 못하면, 삶의 가치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간다. 오직 생존만 있을 뿐이다. 살아남기 위한 동물적 본능에만 충실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엄청난 도전을 주시는 말씀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영부영 사는 적당하게 세월을 보내 사는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적어도 제정신을 가지고 살려는 사람은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한다고 하신다.
목숨이란 사전적으로 ‘숨을 쉬며 살아 있는 힘’이라고 한다. 한문으로 ‘생명(生命)’ 살아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라는 목숨은 인간 스스로 만들었거나 진화되어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라는 것이다. (창2:7 욥12:10) 그러므로 사람이 이 목숨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암2:14)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목적을 가지고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을 가지고 은혜를 받으면 인간은 하나님의 목적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궁금해야 해결도 되고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무의미하게 살아가도록 창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예수 믿기 전에는 삶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 한다 해도 답을 못 찾는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 사람은 사람을 아무리 연구해도 답을 발견할 수 없다.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찾을 수 있는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목적은 우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으신 분이시다. (막10:45, 요10:11, 요10:15) 이렇게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목적을 삼으신 것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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