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6 주보
믿음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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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6 11:49
처음에 제가 이 말씀을 읽고 든 의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길에, 왜 뜬금없이 길가에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마르게 하셨는가?’입니다. 더구나 마가복음을 보면 그때는 무화과 열매가 열리는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또 이상한 것은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후에 제자들이 “어찌하여 이 나무가 말랐습니까?” 라고 질문하자, 엉뚱하게도 믿음을 이야기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강한 절대적인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믿음을 가지면 산을 옮길 수 있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제자들의 질문에 엉뚱하게도 믿음의 중요성과 믿음의 능력을 말씀하시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제게 여러모로 어려운 말씀으로 기억됩니다. 무화과나무에게 왜 그렇게 하셨는지?, 무화과나무가 뭘 잘못한 건지?, 예수님은 갑자기 왜 그렇게 과격하신지?, 예수님의 대답은 적절한 대답인지?...
물론 지금은 이 말씀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도 알고, 그렇게 행동하시고 대답하신 배경과 의미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오늘 본문의 이와 같은 몇 가지 의문을 살펴보고, 이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선 오늘 사건은 당연히 즉흥적인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날 즉흥적으로 그렇게 하실 분도 아니고, 또 그런 사건이라면 마태나 마가나 기록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번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마지막 일주일이 잘 계획되고 준비된 시간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최후의 시간에 완성하실 많은 일들을 마음에 품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예수님께서 그 중요한 시간에 길 가의 한 무화과나무에 가셔서 공연히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실 리가 없죠.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일을 행하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고보면, 마태복음은 21장 처음부터 예수님의 파격적이고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상징적이고 예언적인 모습과 행동들입니다. 나귀 새끼를 타신 것, 성전 정화를 하신 것. 그러므로 우리는 이어지는 이 무화과나무 사건 역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